제비꽃이 핀 보랏빛 아침이다. "반갑다 제비꽃!" 하고 이름을 부르니 남방에 갔던 제비가 쏜살같이 돌아오는 것 같다. 곧 동네엔 모내기가 일어나고 들은 모들로 힘차게 푸르러질 것이다. 제비가 집을 짓고 아가들을 기르면 여름 한낮, 해바라기의 때가 시작되리라. 해바라기 싹은 그 어느 해보다도 노랗고 탐스런 꽃을 피워 물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태세렷다.
지난 봄날 멀리 여행을 떠나기 앞서 주차장 쪽 뜰에다가 해바라기씨를 뿌렸다.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이제 그만 눈 뜨렴! 해바라기 이름을 계속 부르면 다른 동네 해바라기보다 훨씬 빨리 해바라기를 볼 수 있겠지? 난 남프랑스 아를의 고흐처럼 해바라기를 무지무지 사랑한다. 해바라기가 노랗게 핀 집, 신비의 꽃이 핀 집은 수도원보다도 많은 기도로 넘쳐나리라. 수시로 해바라기가 햇님의 이름을 부르듯, 나 아니고도 이 산골 집에 모든 동거 생명들은 주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것이다.
주님을 일컫는 이름 ‘야훼’는 원래 발음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주님의 이름을 행여 망령되이 부를까 몰라 자음만 종이에 적어 전해진 결과다. 모음을 뺀 자음만을 쓰고, 이를 읽을 때는 ‘주님(아도나이)’으로 읽었다. 야훼라는 발음이 공공연하게 된 건, 4개 자음 문자(YHVH), 테크라그라마톤에 ‘그 이름’이라는 ‘하쉠’의 모음 ‘아예’를 넣어 ‘야훼’라 발음한 게 시작이다. 그러니까 그냥 추측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야훼를 통일했을 뿐이란 소리다.
처음 유대 땅에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후두와 혀를 입안으로 삼켜물듯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나마 주님의 이름이 발성되는 것은 오로지 성전이었고, 주님의 이름이 사제로부터 발성되면 백성들은 떨리는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영광된 나라의 이름이 영원토록 거룩합니다.”라고 응답송을 바쳤다. 그렇게 고이고이 전해 내려온 이름, 그러다가 감추어진 이름...
사람이 그 이름을 다 헤일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의 이름이 크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은 지워져도 좋다. 모든 세상의 이름은 다름아닌 주님의 이름이다. 부처님도 알라님도 타오(道)도 당신의 이름까지도 모두... 크신 이름을 담겠다고 작은 그릇을 내미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기를. 온 땅의 모든 목숨 것들은 주님을 찬미하는 한목소리요 주님의 이름을 지닌 한목소리다. “합비타 아네니 야으훼 엘로하이...” “주님 저에게 응답하소서 야훼 하느님...” 모든 목숨 것들의 목소리는 주님의 응답을 구하는 소리를 낸다. 천둥번개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개울물소리, 경 읽는 소리, 잠자는 소리, 어린이 젖먹이들의 웃음과 울음 소리... 나뭇잎을 갉는 애벌레의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응답을 바라는 한목소리다.
사람이 부르건 안 부르건 주님의 이름은 엄연히 세상을 뒤덮고 계시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안심이 되어 평화로운 단잠을 잘 수가 있다. 마치 어떤 징크스처럼 말이다. 나폴레옹 1세는 반지를 끼고 전투에 나가야 승전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토글리아티는 헤진 푸른색 양복을 즐겨 입었는데, 그래야만 중요한 정치 여정이 순탄해졌단다. 유대 나라 백성들은 신의 이름이 불리어질 때 비로소 희망을 발견했고, 용기백배해졌다.
라틴어에 ‘Nomen est omen’이란 말이 있단다. 이름(Nomen)은 징조(Omen)라는 말. 예수님은 히브리말로 ‘요수아’라 불린다. 요(야훼) 슈아(구원하다)... 주님이 자기백성을 구하신다는 뜻이다. 이름의 징조대로 예수는 친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죄 많은 세상을 그의 붉은 피로 해방하였다. 이름 부르기 징크스... 지구별의 많은 이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늘에 기도를 바치는 까닭이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는 구원되고 해방된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내 마음에 상처가 걷히고, 보고픈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것처럼...
사람은 이름을 가진 존재다.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입술 밖으로 냉큼 목소리를 낸다. 인도사람들은 목소리를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하는데 제랄(jelal)이란 목소리는 힘을 표현하고, 제말(jemal)은 아름다움을, 케말(kemal)은 지혜의 목소리란다. 사람은 이 세 가지 목소리 가운데 하나를 받아서 태어난단다. 그런데 ‘탄센’이라는 요기는 이 세가지를 잘 조합하여 노래함으로서 기적을 일으켰단다. 그는 연주하며 노래하는 행위보다 소리 그 자체에 능통하여 목소리의 힘만으로 영혼을 위로하고 생명조차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목소리로 서로를 부르며, 노래하며, 또 우리 주님을 찬미하며 살아갈 것인가.
주님께 힘을 구하고, 아름다움을 구하고, 지혜를 구할 때... 연약한 우리는 혼자 말고 여럿이 모여 기도하면 좋겠다. 세상 모든 만유만물을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무엇을 더 못주시겠는가. 아니 먼저 우리는 대체 무엇이 더 부족하다는 말인가. 다만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게지.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관계는 소원해지고 만다. 외롭다고 그림자만 길게 늘일 일이 아니다. 우리는 멀어진 길을 당기고, 말벗이 되어 자리하며, 시시때때로 호명되고 호출해야 한다.
하늘에 달아놓으신 달과 별이라는 표현은 참 시적이다. 평면 우주가 아닌 입체 우주를 그린 그림 같다. 히브리어 ‘호데스’는 초승달, 새로운 달이라는 뜻이다. 한 달이라는 뜻의 호데쉬는 새로운 달 호데스가 둥시럿 밤하늘에 떠야 생겨나는 법. 월력 음력에선 해보다 달이 우선이니까. 호데스는 새롭게 만든다, 갱신한다는 뜻의 ‘하다쉬’에서 온 말이렷다. 모든 달과 별은 새로운 세상의 징조가 분명하다. 주님의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일꾼으로 부름 받은 존재다. 희년의 일꾼들. 부끄러운 짓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정의와 평화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다음가는 계급을 가진 존재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는 고관대작 정치인, 배불뚝이 부자들, 치렁치렁한 옷을 걸친 고위 성직자 종교인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말이다. 지극히 가난한 바닥사람들까지도 하느님 다음, ‘넘버 투2’다. 하느님나라에서 ‘넘버 쓰리3’란 없다. 성서의 이런 계급 표현은 당시나 지금이나 혁명적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있다면 오직 한분 하느님뿐. 그분의 외아들 예수님조차도 우리를 친구로 받아들이며 어깨동무를 하셨질 않는가.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여기서 그를 일국의 왕으로 읽거나 메시아 예수로 읽는 해석은 엉터리다. 여기서 그는 우리 모두요, 우리는 선한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길동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