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구구절절 노랫소리
야훼여! 노여우시더라도 나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나를 벌하지 말아 주소서.
야훼여! 힘이 부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뼈 마디마디 쑤시오니 나를 고쳐 주소서.
내 마음 이토록 떨리는데, 야훼여!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야훼여! 돌아오소서, 이 목숨 구하소서.
당신의 자비로써 살려주소서.
죽으면 당신을 생각할 수 없고 죽음의 나라에선
당신을 기릴 자 없사옵니다.
나는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시고
나의 잠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울다울다 눈이 안 보이고, 괴롭다 못하여 늙고 말았습니다.
악한 짓 하는 자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라.
내 울부짖는 소리 야훼께서 들으셨다.
야훼께서 나의 애원 들으셨으니 야훼께서 나의 기도 들어 주시리라.
내 원수들이 모두 겁에 질려 당황하는구나.
창피하거든 어서들 물러가거라.
장자에 ‘진비(眞悲)는 무성이애(無聲而哀)’란 말이 있다. 참된 슬픔은 소리가 없어도 슬프다는 뜻. 오늘 이 시인은 너무도 슬퍼 울음도 울지 못하고 명치끝이 다 시큰할 정도. 시인은 ‘내 영혼이 심히 떨립니다. 오! 주님 어느 때까지입니까’ (2-3절) 하늘의 선처만을 구하며 눈물바람 콧물바람의 비나리요 구구절절 노랫소리다. 가여운 사람, 울다울다 눈이 먼 사람. 괴롭다 못해 일찍 애늙은이가 된 시인...
영혼 ‘네페쉬’가 떨린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영혼 또는 마음은 몸과 다른 무엇이기도 하다가 목숨을 지칭할 때는 몸이랑 한가지로 쓰이기도 한다. ‘비르아다’란 말은 떨리다, 울리다, 좌우로 휘청거린다는 뜻. 포도주에 취할 때처럼 마음이 갈짓자로 휘청거려 본 일이 그대 있었던가. 그때 누군가 그대의 곁에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고, 어깨를 붙잡아 부축하여 준다면 그이는 그대의 천사가 맞다. 천사는 때로 전령(Messenger)이 되어 하늘의 응답을 들려준다. 오늘 전령은 그대에게 이처럼 얘기한다. “주님께서 그대의 애원을 들어 주시리니 이제 겁내지 말라!”
제 아무리 무서운 원수라도 주님이 함께 할 때 무엇이 두려우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굽비오 마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늑대 무리의 대장을 마치 어린양처럼 순하게 길들였다. 늑대는 성 프란치스코의 발아래 엎드려 잠을 잤고, 다른 모든 늑대들도 이 모습을 보고 프란치스코에게 꼬리를 내렸다. 성 프란치스코는 칼과 창으로 겁박하며 늑대를 이긴 게 아니다. 사랑과 연민의 가슴으로 대하면서 빵을 나누자 늑대 무리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형제가 되었다. 공권력을 부당하게 사용 국가폭력 시비를 낳고, 비밀경찰을 통한 야비한 사찰과 가지가지 여론 조작과 부정부패로 쌓은 재물을 가지고서 기세등등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만한 선량한 자, 주님이 함께하는 겸손한 이는 온갖 거짓의 회전목마에서 성큼 내려 얼음벌판을 두려움 없이 홀로 걸어간다. 두고 보라. 걸음걸음마다 꽃이 필 터이니...
자비란 ‘라하밈’이다. 어근은 어머니의 자궁을 가리키는 ‘레헴’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자비하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버지로 불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도 불리어야 마땅하다는 걸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자궁을 가진 하느님. 지구별이라는 자궁에서 당신을 또다시 배태하고 계시는 어머니. 하느님이 시방 뱃속에서 기르고 사랑하는 고귀한 저마다의 생명을 짓밟고 죽이려는 자들이야말로 단연코 우리들의 원수 마귀다. 전쟁 상대역, 적으로 번역되는 ‘오엡’, 반대자들로 번역되는 ‘초렐’, 미워하는 자라는 뜻의 ‘소네’는 결코 ‘하느님 어머니’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 자기 자식, 자기 백성을 지키려는 ‘하느님 어머니’의 각오와 희생의 의지를 어느누구도 짓밟을 수 없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정말 종지부요 멸망이요 최후란 말인가. “죽으면 당신을 생각할 수 없고 죽음의 나라에선 당신을 기릴 자 없사옵니다.”... 과연 그러한가? 북미인디언 수우족에겐 작별인사가 없단다. 작별이란 이 세상에 애당초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란다. 죽음이 이 세상과는 인연이 다했음을 상징할 때엔 오늘 시편처럼 완강한 단절, 절연의 겨울노래로 불리어지지만, 주님의 선한 백성이 가진 희망을 노래할 때라면 ‘명예회복, 신원회복’의 ‘부활 신앙’을 담은 완연한 봄노래로 돌변하게 된다.
부활(resurrection)을 라삐 헷셀은 이렇게 정의했다. “인생이란 사람답게 되어가는 과정(Life is a process of becoming human)이며 이 과정이 바로 부활이다.” 부활이란 신앙인의 결과요 상급으로 주어지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 그 또한 인생의 과정이라는 얘기렷다. 붓다의 가르침에도 강가(Ganga) 야무나(Yamuna) 사라부(Sarabhu) 아찌라와띠(Aciravati), 마히(Mahi) 이 다섯 강물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인명은 바다로 흘러 열반을 이룬다고 했다. 더디더라도, 스러지고 넘어지고 때론 절망스럽더라도 물처럼 바람처럼 물러서지 않으며 포기하지 말 것. 오로지 굴하지 않으며 기도하고 싸우는 자여! 그대는 이미 부활한 새사람이렷다.
기도는 ‘터필라’라 한다. 부르짖음이기도 하고 하소연이기도 하며 탄원이기도 하고 설운 노래이기도 하다. 시편은 기도의 이론서가 아니라 실천서다. 주님의 정의를 구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는 먼저 자비행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위로를 구하는 자는 먼저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 프랑스 외딴 마을 떼제 공동체에 가면 “주님의 자비를 영원히 노래하나이다 Misericordias domini”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짧은 노래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하여 부른다. 그러나 다만 노래로 그치는 자비라면 그저 공염불일 뿐. 부의 축적이나 이기적인 행복의 욕망에서 벗어나 이제부터 우리는 ‘자비로운 선한 이웃’으로 살아가자.
장독대 옆 사과꽃은 원전이 없어도 전기를 끌어들여 충분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 별과 창문은 노란 개나리꽃등을 밝히고, 배나무 벚나무는 밤새 새하얗게 빛나는 가로등이다. 관목들도 저마다 푸른 잎사귀로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딘 보람을 얻고 있는 봄날.
울퉁불퉁한 당신 인생길을 자비로서 평평히 펴주시는 주님. 광부처럼 새까만 얼굴이어도 당신의 눈빛만큼은 초신성보다 밝아지기를! 영하의 날씨처럼 차가운 술을 밤새 부어대는 의기소침한 당신, 더는 염려하지 말기를! 앞으로는 주님이 정녕 함께하며 보살피시리니...
“당신은 내 외로운 기도의 응답! 당신은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요. 당신의 사랑을 받기 전까지는. 당신이 떠난다면 눈물밖에 없을 거예요. 태양도 뜨지 않을 것이고 눈물은 비가 되어 내리겠지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모든 것인 당신!” (닐 세다카의 노래 'You mean everything to me'에서)
들으셨나요, 내 울부짖는 애원. 고투어린 핏방울로 싸워온 인생의 절절한 노랫소리... 주님, 진짜 들으신 거 맞죠?
-------------------
임의진은 시인, 수필가다.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