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는 사람들
사막나라 키 큰 선인장들은 불타는 태양아래 직립으로 선 채 진종일 도열하여도 굽힘 없고 늠름하기만 하여라. 가시 많은 선인장이라도 와락 안아주고 싶은 날. 숲속 나무들은 서로 잎가지를 넓혀 그득한 가슴으로 안아주고, 그리하여 생겨난 푸른 그늘 밑에선 팔 괴고 누워 철 이른 낙엽 한 장 떨어지길 바라는 가을벌레들이 비나리손을 쓰삭거린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 사는 구름이 살짜기 내려와 낙엽보다 먼저 풀밭을 안아주는 여름 하루. 살갗의 온기조차 싫어지는 이 더운 여름에 나는 뜬금없이 안아주는 사람, 안아주는 예수를 묵상해본다. 불볕더위와 열대야에 시달리다가 그만 사람의 온기마저 괴롭고 귀찮게 여겨질까 염려해서인가.
안아주는 사람을 생각하자면 누구보다도 독일의 판화가이며 조각가 케테 콜비치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케테 콜비치는 주로 전쟁 중의 어머니를 소재삼아 그렸는데, 전사통지서를 받고 남은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우는 어머니, 폭격을 피하고자 아이를 보호하며 온힘을 다해 끌어안은 어머니, 전쟁 통에 기적처럼 반갑게 만난 사랑하는 이웃들... 대다수 작품이 ‘안아줌’과 연결되어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어떤 구호보다도 호소력이 짙었던 ‘안아주는 사람’은 실업과 노동 착취, 기아와 전쟁이라는 이 경악할만한 현실 속에서 인간 존엄과 참 평화에 대한 갈망을 사실적인 화법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또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지.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1642), 잃었던 아들의 귀향(1668)에서 담아낸 서로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맞아들이는 장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어떤 장면에 모셔다가 화폭에 담아낸다면 그런 그림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많은 교회의 성화들도 ‘안아주는 장면’으로 성육신과 신의 사랑을 얘기해 왔다.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마가 10, 16)
“예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요한 13, 23)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25)
우릴 가슴 가득 안아주셨던 예수. 추운 체온을 덥히는 화톳불이 되어주고 서편하늘 마지막 순간까지 껴안아주는 까치놀이 되어 주셨던 분.
우리가 서로 ‘안아주는 사람(Hugger)’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그래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명한 응답이며 구령이다.
에르네스토 까르디날 신부가 섬겼던 니카라과 농촌 솔렌띠나메 신자들. 그들 가난뱅이 농부들끼리 조그만 골방에 둘러앉아 서로 안아주고 복음을 나누며 살아가자 그 어떤 거대한 규모의 교회당보다 훨씬 아름답고 모범적인 신앙공동체로 자라났다.
어지러운 말잔치와 자랑삼은 초대형 건축물보다도 서로들 가슴으로 안을 수 있을 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게 된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오만불손한 부자들은 옷이라도 더렵혀질까봐 구겨질까봐 끌어안지 못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를 연민하며 격하게 안아주고 적극적으로 보살핀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열렬하고 뜨겁게 사랑할 줄 아는 택한 백성들이다.
까르디날 신부는 다음처럼 얘기했다. “가난한 사람들로서는 복음서를 주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복음서도 가난한 사람들, 즉 어부들의 손으로 쓴 책입니다. 부자들이 풀이하는 복음서는 아주 다릅니다. 이 나라에서 설교는 복음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해서 풀이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우선 하나님 나라는 도저히 지상에 설수 없으니 무지몽매하게 믿다가 죽으면 천당에나 가자는 얘기로 시작됩니다. 지상에는 어쩔 수 없이 불의가 있기 마련이고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있게 마련이라는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서를 읽은 뒤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콕- 집어서 말할 줄 안다. 서로 ‘안아주는 사람’이 되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다짐한다. 세상에서 버려진 조무래기 아이들을 안아주신 예수, 또한 그의 품에 안겨 사랑받았던 제자는 촌뜨기 농부요 어부였다. 그러나 왜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무시 받고 추방되어야 하는가. 그들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목사와 신부는 목소리를 줄일 것을 요구받고 더러 변방에 유배되곤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거칠게 교회에 항의한다. 우릴 왜 안아주고 자매형제로 받아들이지 않느냐... 가진 자의 편에 서서 능멸하느냐.... 예수가 안아주었듯 왜 안아주지 않느냐... 그리고 돌너덜길이라도 달려가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서로 안아주며 사랑들을 한다. 인정이 넘치는 시골 동네에 한번 가보라. 교회보다 자그마치 곱빼기로 교회답다.
종말 상황 끝
수백만 개의 거울이 벽에 걸린 궁전이 하나 있었다. 거울궁전이라 이름붙인 그 궁전에 순례자가 방문하면 수백만 개의 자기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백성이 아주 많은 큰 나라에 온 듯 착각에 빠지도록 구상한 임금님의 아이디어였다. 하루는 들개가 어슬렁 거울궁전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수백만 마리의 개들이 자기를 노려보며 짖어댔다. 다음날 개는 싸늘하게 죽어서 발견되었다. 그 개는 오직 홀로 그 궁전에 있었을 뿐이며, 어떤 개도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았는데도 공포에 사로잡혀 결국 죽고 만 것이다. 개에게 그날 밤은 무섭고 치떨리는 종말의 밤이었을 것이다.
종말을 믿고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어쩌면 거울속의 개나 같은 진배없는 모습이리라.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저 혼자 부르르 떨며 맞는 종말은 참으로 어리석고 딱할 따름이다.
예수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군중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날 들려주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누가 21, 20-28)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는 말씀은 예수를, 하나님을, 감사한 오늘의 삶을 똑바로 응시하고 직시하라는 주문이었다. 장차 이루어질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아니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죄다 종말 상황이란 말씀이었다.
예수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의 안식일에 십 팔년 동안이나 병에 시달렸던 여자를 고쳐주었다. “여자에게 손을 얹어 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누가 13, 13)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해주는 예수, 이렇듯 우리들의 급박한 종말마다 개입하시고 치유와 위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이미 죄를 용서받는 속량의 은총은 우리에게 이르렀고, 더 이상 불벼락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징징거릴 이유가 하등 없게 되었다. 예수로 인해 우리는 종말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완전히 놓여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조그만 천재지변도 종말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생의 근거들이 턱없이 허약하고 수명도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기원전 6세기에 고향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새 하늘 새 땅이 세상에 펼쳐지리라고 희망했다. 그러한 종말론적 세계관은 예언자 이사야와 다니엘에 이르러 공의의 심판론과 맞물려서 확대 생산되었다.
예수는 종말에 대한 설교(마태 24)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세상 끝이 되면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리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이미 예수를 통해 성전은 용도 폐기되었고(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 이게 곧 세상 끝날이었으며, 사람의 아들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되살아나 부활하였다.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종말의 완성이라는 입장은 계시록에 이르러 더욱 명백해진다.
예수의 종말 설교는 핏물이 골목마다 넘치는 식민지, 절박한 가난 속에서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모진 비바람에도 꽃들이 쓰러지지 않듯 위태롭게 다문 입술들을 열어 하나님을 굳게 믿고 마음껏 호산나 해방을 소리치라는...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인 사람들에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는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지금도 골목마다 언덕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아라.
우매한 군중들은 사도행전에 이르러서까지, 아니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지구적 종말을 상상하며 얼토당토않은 말들에 넘어가 바르르 떨면서 살아간다. 집을 팔고 땅을 팔고 소를 팔아 종교 사기꾼들의 배나 불린다. 비참한 종말을 무덤 파듯 스스로 파고 사는 격이다.
허리를 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에 가득 찬 얼굴들을 만나기에도 부족한 인생살이. 구름을 타고 손오공이 내려올 것인가? 아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비와 눈, 솔개나 비행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음이렷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자들은 가상하지만 이 대목에선 색안경을 당장 벗어야 습하고 음한 종말적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유대인들은 구름의 운행을 하나님의 현존을 알리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출애굽기 13장을 보아도 구름기둥은 하나님이 켜놓은 등대나 같았다. 예수가 승천하실 때도 구름을 따라 올라갔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사도행전 1, 9) 마술처럼 뾰로롱 사라지는 장면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예언자의 이러한 신비로운 퇴장은 근동지방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 허다하다. 승천하며 구름에 휩싸인다는 건 파국과 멸렬의 상징이 아니라 재등장의 여지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공동체의 다짐을 상징한다. 예수 재림은 예수를 진실로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사람에겐 이미 생생하게 재림하여 계심이다.
여기 주어진 이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승천하여 눈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우리 곁에 함께 재림하여 계신 예수를 발견할 수 있음이다. 예수를 바라보면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 종말은 없고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사는 은총과 축복이 해일처럼 밀려들 뿐. 죽음이 없다고 믿는다는 사람들이 시한부 종말을 믿는 걸 보면 참으로 이해불가, 불우해 보이기까지 하다.
실패자의 자유
산비탈에서 십년 걸려 내려와 현관 마당에 고이 피어 살랑거리는 부용꽃. 시끄럽고 부산한 성전에 멀미가 난 예수, 저처럼 산골 어귀 수수한 마당에서 고요하고 한갓지게 피었으리라 짐작한다. 꽃핀 마당에 들어서면 첫 시작부터 은은하고 향기로워서 수상가옥은 절대 알 수 없을 기쁨과 보람으로 충만하다.
첫 시작, 첫 장면은 그렇게 의미가 깊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의 첫 시작, 첫 단락을 그럴싸한 미사어구로 도배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기자는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의 첫 번 설교 장면을 아주 난장판 난리굿으로 묘사했다.(누가 4, 16-30) 이 장면을 충분히 뒤로 편집할 수 있었을 게고, 아니면 통째 들어내거나 적당히 숨기고 감추어도 될 만한 치욕으로 보여지는데...
예수의 설교는 나사렛 고향 주민들의 분한 가슴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이미 가버나움을 일차로 거쳐 고향동네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주민들의 자존심을 건든 형편이었는데, 설교 내용조차 이스라엘의 잘못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굳이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길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나사렛은 지정학상 이방인들과 교류가 빈번했던 다문화 촌락이었다. 그래서 순혈주의에 사로잡혔던 당국과 예루살렘은 나사렛 사람을 멸시하고 천대했다.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욕지기에 다름 아니었다. (마 태 26, 71) 그런 나사렛 사람들 앞에서 이방인의 구원을 이야기 하는 것은 곧 예루살렘과의 단절을 이야기하고, 배반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돌아오는 것은 무시무시한 보복이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은근히 로마와 유대총독부가 두려웠다. 예수를 지지했다가는 큰 화를 입을 것이 명백해졌다. 그래서 예수를 참람하다며 동네 밖으로 내쫓고 극렬한 일부는 산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뜨리려고까지 하였다.
예수는 자유로우신 분, 누구에게도 얽매이거나 조종 받지 않는 분이셨다.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인기를 누리고 싶은 욕심이라곤 전혀 없으셨던 분. 오직 복음 선포라는 중차대한 하늘의 뜻을 펼치시는 데만 진력할 따름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수도자 마르띠니(C.M Martini)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주님, 주께서 최초로 당신의 모습을 보이신 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복음 선포라는 것이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님을,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님을, 어디에 초석을 놓고 그 돌이 영구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그런 일이 아님을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자유로움에 참여하는 것임을, 당신의 널따란 시야에 끼어드는 것임을, 그 비상한 자유의 부요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깨우쳐주소서.”
예수는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기 사명에 충실할 뿐, 잔망스럽게 위선을 떨지 않았다. 키 높이 깔창을 신고 높은 관리들과 대사제를 만나 선처를 구걸하지 않으셨다. 민심을 사기 위해 침도 바르지 않은 거짓부렁을 내뱉거나 뒤스럭거리는 쇼맨십으로 승부하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상한 자유의 부요함이 예수를 선명하고 강력한 예언자로 단련시켰다. 벌판의 경계선을 지우는 눈보라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는 예수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세상은, 그를 성공담보다 실패담의 주인공으로 몰아갔다.
줄 풀어진 개처럼 날뛰었던 것도 아니고 뒤집혀진 풍뎅이가 뱅뱅 돌 듯 정신없이 까분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할 말을 다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
예수는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치고 빠지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값어치를 한 차원 높였다. 눈치를 보거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성장주의, 번영주의, 성공주의, 맘몬에 사로잡힌 기성의 회당들과 사제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예수를 멤버십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아우르는 구원을 이야기함은 물론 가난뱅이 민중들의 구원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예수는 치명적인 골칫거리요 불순분자 빨갱이였다.
반면 예수는 나사렛 방문을 계기로 실패자의 자유, 굴하지 않는 복음진리의 영검한 자유에 겉불꽃을 지피게 되었다. 점차 이 불꽃은 예루살렘과 로마로까지 번져갔고 소사스럽고 기연미연하던 군중들을 차례로 골고다 언덕에 집결시키기에 이르렀다. 인간으로는 마지막 실패인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죽음과 텅 빈 무덤을 통해 예수는 대반전 대역전극을 꾀한다. 죽임의 세력으로부터 유쾌하게 승리한 부활 예수, 정의의 최후 승리는 무수한 실패와 좌절 끝에 얻어지는 영광의 면류관이렷다.
예수라는 희망버스
맨스필드라는 시인이 말하길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고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참고 인내하면서 노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희망은 언제나 고통의 언덕 너머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정녕 그러한가. 희망은 고통의 언덕 너머에 진짜로 있는 것인가.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은 그 언덕너머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보았다면, 그랬다면 시인의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겠다.
재벌 기업의 탐욕에 희생되고 해고당한 다수의 노동자들, 그들의 짐을 대신지고 크레인에 올라 농성중인 연민의 사람과 나는 남남이 아니라 한 몸 한 지체다. 전 세계 노동자는 한 핏줄로 고락을 같이 나누는 혈연지간이렷다. 오늘의 예수가 멘 철제 십자가 크레인에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들 간다. 잠깐의 고통이나 슬픔을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귀중한 한 목숨 내어 걸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는 뜨거운 목소리는 예수의 고독한 투쟁과 다를 바 없구나. 예수의 죽음을 하찮은 남의 죽음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어떤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을 소리겠지만. 예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얘기로 들릴 것이다. 목수노동자 예수, 농부노동자 예수, 어부노동자 예수, 광부노동자 예수, 시인노동자 예수, 설교노동자 예수...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이질감보다 동질감을 더 많이 느꼈다. 그래서 희망버스에 같이 올라타 고난 받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해고당한 사람들, 군대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 곁으로, 단체로 찾아들 갔다. 그것이 이스라엘 전역을 순례한 ‘예수 희망버스’였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0, 40) 하지만 반갑게 맞아들이는 사람은 드물고 냉택 없는 소환장과 훼방버스라는 불온한 낙인뿐. 우리에게 인간성, 인간됨을 버리고 연민행을 실천하며 살지 말라는 소리인가. 인간이 아니라 맘몬의 노예로 사는 짐승이 되란 소리인가.
전투 경찰을 태우고 가던 버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잘못 태어났나봐. 무섭게 생긴 검은 몽둥이며 최루가스며 방패들, 진압 장비들을 가득 싣고서 철망으로 유리창도 모두 가린 채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만 하다니. 주눅이 든 어린 전경들과 밤낮 없는 명령조 말들. 내 등 뒤에 숨어서 선임들이 마음 놓고 후임들을 구타하기도 해. 나는 절망버스인가 봐. 희망버스가 너무 부러워. 저기 희망 버스에 탄 사람들의 밝은 얼굴들을 봐. 세상의 가장 가엾은 사람들을 끌어안는 사랑들을 봐. 언젠가 내가 폐차가 되고 새로운 주물로 재탄생한다면 나는 희망버스가 될래.” 가엾은 경찰 버스는 오늘도 희망버스를 멀리서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뿐이다.
소경에게 예수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묻자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예수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었고 소경은 그날부터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가 10, 51-52)
예수의 자매형제들인 교회는 지금도 똑같이 세상에 물어야 한다. “교회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각 사람들의 소원을 받아들이고 중재하되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며 눈을 활짝 뜨게 도와주어야 한다. 희망버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성원 모두에게 다가가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허황되고 반복음적인 내세 천당 장사로 돈벌이를 삼는 무뢰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교회는 세상의 갖가지 문제에 정면으로 다가서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만드는 희망버스가 되어야 한다. 행여 훼방버스라는 비난에도 동요하거나 오줌을 지리며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예수에게도 당시 성전주의자들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내내 훼방꾼으로 비쳤을 따름.
그대 배불리 씹고 있던 고기를 이제 뱉을 때가 되었다. 늙은 상수리나무도 제 몸을 베어 숲의 거름으로 쓰질 않더냐. 가죽나무 이파리는 어린 애벌레의 집이 되어준다. 목이 마른 강물을 위해 구름은 물주머니를 모두 비우고 텅 빈 가을하늘로 푸르렀다. 묵정밭에 버려진 사기그릇은 어린 개구리를 숨겨 뱀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다. 모두가 누군가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데, 그대는 시방 무엇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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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이자 수필가다. 남녘교회에서 10년간 담임목사로 지냈다.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