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속의 뜨거운 침
‘에큐메네’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에서 비롯된 말로 ‘사람 사는 땅’이란 뜻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사람 사는 땅을 두발로 유유히 거니신 하나님, 이 땅에 와서 사람 예수가 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성육신 신앙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렷다. 사람이 하나님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사람이 되신 것, 그것이 다른 이웃종교들과 구별되는 기독교 신앙의 독특함이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직접 방문과 참여에 감격하고 감사한다. 사람 하나님인 예수의 생애는 우리들을 가슴 뛰게 만들었다. 우리네 인간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그분의 완벽한 일치와 합일, 참여와 동행은 우리를 2천년동안 감동에 빠트리고 있다.
성서에서 가장 예수의 ‘인성’이 강조된 구절을 찾으라면, 나는 두 번 생각 않고 예수가 침을 발라 병자를 고치는 장면을 들겠다. 예수님이 침으로 병자를 치료한 일은 딱 세 번 있었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눈먼 장님(요 9, 6)과 벳새다 동네의 가엾은 심봉사(막 8, 28), 귀먹고 말도 더듬는 사람에 대한 치유 기적사건(막 7, 33)이다.이와 같이 침을 사용한 치료는 당시 지중해 연안과 팔레스티나, 중동사막에 만연했던 민간 의술로서 ‘주술사의 등장과 병자의 대면, 침 뱉기와 치유 확인, 음식 나눔’이 떠들썩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침을 환부에 직접 바르는 행동의 전후는 주술사마다 서로 달랐다. 예수에게서 보여지는 특이점은 침을 뱉고 바른 다음에 들려주는 그분만의 해방의 말씀, ‘죄 없다 함’이었다.
예수가 침을 뱉고 환부에 손을 대어 만진 사람들은 모두 누구인가. 기타 종교지도자들은 상종도 하지 않던, 지독히 냄새나고 더러운 병자들로 이들을 싸잡아 죄인으로 여겼다. 예수는 그 입속의 뜨거운 침을 발라 병든 사람들, 죄인이라고 지목된 자들을 단절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빛의 마당으로 이끌어냈다. 이때 성서기자는 치료했다는 뜻의 테라퓌오(terapuo)라는 말보다는 아폴뤼오(Apoluo)라는 해방했다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판단이다. 억압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참 해방을 안겨 주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다가가 그 입속의 뜨거운 침까지 주저 않고 건네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스킨십, 입술 바깥의 뜨거운 키스나 같은 것, 사랑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해방, 병상에서 일어날 뿐만 아니라 대로를 활개치고 다닐 참 자유가 이제 병자들 약자들의 것이 되는 순간이다.
예수가 침을 뱉어 사람을 살리는 것과 정반대로 로마 제국과 앞잡이 빌라도의 군사들은 예수에게 침을 뱉어 모욕을 안겨 주었다.(막 15, 19)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술로 나누는 침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뱀이 이빨로 물어뜯으며 독침을 들이미는 것과 다름없는 더럽고 악한 침이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글 가운데, “치료란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고, 해로운 정기들을 쫓아버림으로써 생명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대 형제가 고통을 받고 있거든 그의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아 줌으로써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의 동맹군을 다시 불러오고 육신의 조화를 회복하는 데는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것이 없다.”(America Indian, 장폴 부르 엮음)
예수의 침은 사랑과 연민의 끈끈한 침이요 신이 허락한 치료제다. 그 침을 환부에 바른 병자들은 더 이상 검은 구름의 박쥐떼에게 사로잡혀 살지 않아도 된다.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에 뱉어지는 침이 아니라, 모욕을 안겨주기 위한 침이 아니라, 동맹군을 살리고자 하는 지극한 관심... 육신의 조화를 도우려는 한없는 연민의 사랑하심이다. 멸망과 죽음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줄기, 마지막 끈, 한 입에 고인 침이 우리네 병든 환부를 쓰다듬고 녹인다. 어머니가 침 고인 혀를 굴려 눈 안의 들보를 빼주듯이 시르죽은 내게 다가와 끌어안으신 예수. 삶이 온통 요동치는 그 순간 레퀴엠은 그치고 실핏줄 속까지 할렐루야가 넘쳐나는 찰나이겠다.
우람한 과일나무에게서 과즙이 흐르듯이 이제 생명나무 예수에게서 흐른 그 즙으로 목숨을 붙이고, 속박에서 해방되고, 울창한 숲이 되어 도열한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나무들, 눈을 잃고 귀를 잃고 말을 잃은 나무들이 바람에 출렁하며 소리 지른다. 환희의 찬송을 새들과 함께 다 같이 부른다. 혀가 마를 때까지, 침이 마를 때까지...
성소수자의 친구
바울 사도에게서 육체의 가시(고후 12, 7)가 꼭 육신의 병마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다른 관점도 충분히 가능하다. 존 쇌비 스퐁 신부를 비롯 예수 세미나 회원 일부는 바울이 성소수자, 남성 동성애자(a gay male)일 수 있다고 말한다. 로마 시대엔 동성애가 비일비재하였으며 바울의 고향 ‘다소’ 또한 그러한 사회 현상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또한 바울은 시종일관 자기 자신을 비하하며 모든 육체(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의 아수라장이 바로 육체라고 혐오했다.(갈 5, 19) 스퐁 신부는 바울의 서신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세련된 우월감으로 뒤덮인 자기 비하의 여러 단층이 조합을 보이는 글”이라고 평가한다. 남성 우월적이고,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이었으면서도 동시에 견딜 수 없는 죄의식을 느끼며 사는 이 고통스런 심리 상태는, 동성애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고전 6, 13)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헤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롬 6, 12),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굳이 내 의지로 하려고 한다면,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가 저지르는 것일 겁니다.”(롬 7, 18)등 육체에 대한 계속되는 부정적 색칠하기는 바울이 통제 불능의 성적 욕망(sexual passion out of control)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의심케 한다고 말한다. 율법 테두리 안에서 혼란을 거듭하며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마당에 예수 운동이 등장하자 이를 박멸하고 율법을 세우는 일에 죽기 살기로 나서게 된 바울. 자기혐오의 다른 방식으로 표출한 예수 운동에 대한 악의에 찬 탄압... 바울은 그러다가 어느새 예수에게 매료되기에 이르고, 율법에 사로잡히지 않는 참된 자유를 맛보게 해준 예수에게서 완전한 해방과 위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수용될 수 있다는 확신에 깃들게 되었다는...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전 7, 8)는 말을 보아 줄곧 ‘독신’을 고수했던 것으로 보이는 바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억제할 수 없는 육체적 욕망을 충분히 안고 부대꼈던 존재였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멀리해야 좋다”(고전 7, 1)는 태도는 여자에 대한 성적욕망이 없는 그 자신의 특별한 소견일 뿐, 도처에서 행간마다 바울은 욕정에 사로잡힌 육체와 줄기차게 싸웠음을 엿볼 수 있다. 율법에 비추어볼 때 죽어 마땅한 정결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예수님은 정의롭게 세우시고 축복으로 감싸주심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바울...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성소수자를 박멸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계도할 불미스러움으로 바라보는 근본주의에 대다수 사로잡혀 있다. 이들의 우울한 단죄의 바이블 벨트는 선교종주국 미국땅에까지 잇대어 있으나 머잖아 이러한 소수자에 대한 탄압과 배제와 저주는 사랑과 관용이 없던 건조한 시절의 옛 풍경이 되고야 말 것이다. 머리맡 차가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씻고 아침을 맞는다면 게으름뱅이도 새날을 맞으리라. 세상은 드디어 복음에 환히 눈 뜰 시간! 가난한 자, 여성, 아동, 장애인, 성소수자 모든 약자들에게 관용하고 관대하며 해방하는 복음이 울창해져야 할 시간이 이제 되었도다. “가시덤불 대신 방배나무가 올라오고 쐐기풀 대신 도금양나무가 올라오리라”(이사 55, 12-13)는 예언이 바야흐로 이루어질 때이니 그대는 부디 까칠한 가시덤불과 쐐기풀로 울타리를 두르지 말고, 사랑이 아닌 저주와 죽임으로 예수의 복음을 욕되게 하지 말기를...
재와 파괴는 더 이상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원리주의 경전읽기에 빠져들어 형제를 단죄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 안된다.
어쩌면 그토록 배타하고 멸시했던 모습을 우리 아버지, 우리 믿음의 선배로부터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 것인가. 앞서 바울 사도에 대한 그대가 상상도 하지 못했을 모습이 진짜 사실 그대로라면 그대는 어떻게 반응 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어느 때라도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정답일 것이다. 예수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죄 없는 자가 이 사람을 돌로 치라!고 우리도 똑같이 말해야 마땅하다. 당신이 가진 육체의 가시 때문에 싸늘한 교회라도, 냉철한 신학자라도 하나님과 당신의 사랑을 떼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 형제, 베두인 순례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집이 없다(눅 9, 57)고 예수는 말했다. 머리 둘 곳 없는, 집 없는 사람은 모름지기 길의 순례자요 길의 방랑자다. 스페인어로 길은 까미노(Camino)다. 순례자는 뻬레그리노(Peregrino)라고 하는데,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자들은 태양의 빗살이 그려진 순례자의 표지판을 따라 야고보 사도가 걸어간 길, 아니 예수가 걸어갔을 법한 그 바람부는 광야 길을 따라 머나먼 순례에 나서게 된다.
광야하면 하갈이란 이집트 여자가 문득 생각난다. 그녀는 광야를 떠돌며 살아간 아람인 아브라함의 종으로서, 대를 잇기 위한 씨받이로 들어가 아기를 가졌는데, 안주인 하갈의 시기 질투에 고난의 삶을 감내한 여자였다. 심한 학대에 못 이겨 광야로 달아났는데, ‘이주, 도망’이라는 이름 뜻처럼 광야에 도피한 뒤 하갈은 피눈물로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사라와 하갈이 숨막힐 듯 억압적인 남성 사회에서 서로 위로하고 연대했다면 그지없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겠지만, 둘은 엇갈린 운명으로 영영 갈라져 저마다 다른 순례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사라의 종 하갈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나의 주인 사라를 피하여 도망가는 길입니다.” “주인 곁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내가 네 자손을 셀 수 없이 많게 불어나게 해주겠다. 네 아들은 들나귀 같은 강인한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이스마엘이라고 지어라. 네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뜻이다.” (창 16장)
아브라함의 무리를 따라다니며 곁가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겨레를 이루어 따로 살도록 조처해주시는 이 무한한 사랑의 돌보심, 그래서 하갈은 하나님을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 (16, 13)이라고 불렀다. 광야에 솟은 오아시스 샘의 이름도 ‘라하이 로이’, 곧 ‘나를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의 샘’이라 불렀다.
이후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바란 사막에서 활을 잘 쏘는 자로 명성을 떨쳤고, 아버지가 죽자 비로소 장례식에 참석했다. (창 25장) 오랜 유랑 끝에 그가 아버지 땅에 방문했을 때 , 그는 이미 북아라비아의 유랑족 베두인의 시조가 되어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법구경엔 “생각이 깊은 사람은 노력을 다한다. 그들은 집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수를 등지고 떠나는 백조처럼 그들은 집과 가정을 버린다. 재산을 쌓아두지 않으며 검소하게 먹는 자, 틀에 묶이지 않는 자유와 해탈을 하는 자, 그런 사람의 길은 허공을 나는 새의 자취처럼 따르기 어렵다.” 는 구절이 있다. 불가에서도 집이 없는 떠돌이 유목민을 자유와 해탈의 존재로 보고 있음이다.
하갈이 그랬듯 이스마엘도 길의 사람이 되어 허공을 나는 새처럼 살았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삭과 야곱에게만 흘러든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과 베드인 족속과 아라비아 유목민 모두에게도 흘러들었다. 민족 갈등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 갈등은 언제나 정착과 안위를 바라는 자들, 약탈로 살아가는 자들, 일용할 양식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아닌 일확천금을 바라는 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중동 사막을 가끔 여행하며 나는 베두인 순례자 무리를 만나곤 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아브라함 후손에게 양보하고 그들은 말고삐를 잡은 하인이라는 뜻의 아피루, 히브리인의 원류처럼 떠돌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잡아먹으려는 사자나 표범이 없는 사막으로 들어가 뜨거운 기후 적응과 양분 저장 능력으로 독야청청 살아갈 수 있게 된 낙타 무리들.... 그 낙타를 가장 빼닮은 사람들이 베두인이다. 세상의 모든 주름살인 사막에서 그 시름을 잊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지극한 보살핌을 읽는다.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눈물, 위독하지만 수술비가 없이 퇴원한 어머니를 붙잡고 우는 아들과 같은 이스마엘의 생애는 하나님의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했다. 눈물이 마를 때 별이 빛나는 것처럼 이제 아라비아 사막은 평화가 가득 번져야 마땅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사라져야 한다. 시인 자가예프스키는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라고 대뜸 말했다. 들나귀 베두인의 목마름을 달랠 이들은 어떤 경우 이삭의 후손들일 때도 있다. 더 이상 삶이 기나긴 비명이 되지 않도록 돕는 하나님의 손길이 베두인 순례자들에게 영영히 미치게 할 시기다. 중동의 평화가 비로소 시작되길... 기나긴 적대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이 순례길에서 아랍과 서구가 화해하여 길동무가 되길 두손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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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시인, 화가다. 10년동안 남녘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시무했으며, 지금은 산골에 은거해 고요히 살고 있다. <예수 동화>, <참꽃 피는 마을>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