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예수와 진흙새
열두제자가 서로 누가 높은지 내기놀이를 하고 있을 때 “이보시오들, 다투어 섬기는 자가 되셔야지 무슨 소립니까!” 예수의 따끔한 일침. 베드로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고 발뺌할 때도 “당신이 사탄입니까?” 차갑게 나무라신 분이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한번 보신 다음”(마가 8, 34), 그런 뒤에 맏형인 베드로를 지목하여 야단치셨다. 이는 곧 모든 제자단을 향하여 경계하신 말씀이라고 보아야 옳다. 정황상, 그리고 기록상으로도 베드로 혼자에게 하신 말씀이랄 수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접어들자 제자들은 예수의 우려대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한 견고한 교권주위를 앞세우게 되는데, 성전에서 드리는 ‘폼 나는 예배’를 좋아했으며, 제자로 선택받은 첫 번째 사람들이라는 권위가 자리 잡게 되는 중이었다. 그런 제자들을 되돌리고 순교라는 거룩한 투신으로 접어들게 만든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반골 아웃사이더 사도 마가의 뚝심이었다. 마가는 오클로스(민중, 군중, 가난뱅이들)의 예수체험담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살아생전 예수가 가장 챙기고 사랑했었던 이름 없는 주인공들,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이나 여인네들, 기적을 맛본 병자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데 뚝심을 가지고 몰두하였다. “너희야말로 우리 어머니이며 형제다”(마가 12, 49)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 위에 손을 얹었다는 얘기에 앞서 “자기 주위에 둘러앉은 군중들을 보시고”가 삭제되었다는 학설은 신빙성이 높은 주장이다. 누가복음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라고 약간 물 타기가 되어있는데, 여기서 지목한 ‘너희’의 본래 말은 ‘오클로스’가 분명하다. 예수는 그들 오클로스, 곧 ‘밑바닥 사람들’ 곁에서 ‘식충이요, 주정뱅이’로 격의 없이 어울리며 하나 되어 춤춘 광대요 길동무며 구세주였다.
전해오는 외경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꼬마 예수는 찰진 흙을 가지고 진흙새를 만들어 놀기를 좋아했다. 양지바른 창틀에 새를 올려놓았다가 부서지진 않을 만큼 마르면 새의 입에 후- 하고 숨을 불어넣어 주는데, 그러면 새들이 살아 숨 쉬며 창공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꼬마 예수의 친구들은 순수하게 놀기에 집중하는 예수가 너무 좋았고, 설탕가루의 맛을 알 듯 예수의 기적의 맛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만약 알면 예수를 로마군이 가만두지 않을까봐 친구들은 너나없이 쉬쉬하고 비밀로 두었다.
진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Adamah)라 한다. 인류의 첫작품 아담은 흙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도 진흙놀이를 좋아하시고, 그의 아들 예수도 흙을 만지며 흙에 기대어 오클로스들과 놀았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목뼈에 있는 힘을 다 준 권위 부리기 좋아하는 자들을 무척이나 경계하였다. 제자들에게 수시로 공동체 안에서 그러지 말 것을 당부했고, 그 뜻을 으뜸으로 따른 이는 사도 마가였다. 마가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를 따른 사람들을 기억한 친구였다. 그리스어로 아코류테오(διακονέω)는 그냥 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중하게 결단하여 예수 운동에 참여하는 걸 뜻한다. 그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의 놀이에 초대된 것이다. 아니 그들은 미친 자본의 놀음, 돈벌이에 몰두하느라 심령이 강퍅해져가는 현실세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해방자 예수의 놀이판이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 너도나도 함께하고팠던 것이다. 오클로스의 축제는, 절망과 낙담과 포기의 과거 생명체에서 희망으로 살아 숨 쉬는 오늘과 내일의 생명체로 탈바꿈하는 기적의 놀이다. 이 창조와 변화의 진흙놀이에 우리도 시방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기어이 하늘나라를 가질(거머쥘) 것임으로...
동물의 왕국
동물들의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해서 뿐이지 동물들도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는 이웃 목숨이다. 서서히 감기는 눈망울처럼 동물원의 갇힌 물개가 힘없이 나를 바라볼 때면 아랫다리부터 힘이 쭈욱 빠져오는 거 같아라. 미안해! 지구별 친구들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야생 사파리는 모르겠으나 철창 속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동물원은 정말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야만스러운 시설물이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대홍수로부터 지키신 분이시다.“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창세기 9) 노아 방주에서 살아나온 동물들이 땅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아마도 달리기 선수 치타와 가젤과 토끼가 맨 먼저 발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은 동물 이야기는 성서에 흔하다. 새를 불러 엘리야에게 고기와 빵을 배달시키기도 하고, 노아의 뱃고물엔 비둘기를 보내서 무지개 새 땅을 약속하신다.
아기 예수의 마구간엔 소와 말과 염소와 양, 낙타와 거위가 함께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동물들 속에서 첫울음을 울었다. 팬티만 걸치고 밀림을 헤쳐 달리는 타잔의 아이, ‘보이’가 예수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나사렛 동네는 사람과 동물들이 한데 엉켜 살았고 목숨붙이 가족이나 진배없이 소중하게 보살피는 목축도 적지 않았다.
“저 까마귀들을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먹여주신다.” (누가 12, 24) 무심한 것과 슬픈 것들로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 각별함이라니... 예수는 공중의 새를 기르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일찍이 알았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 옷을 걸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라.” (요나 3, 7)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 빌면 용서를 해주신다는데, 성안에 있는 12만명의 사람 목숨만큼이나 동물들의 목숨 또한 걱정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믿음이 간다. 동물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먹을 게 딱히 없다면 또 몰라도 일부러 잡아먹기를 즐기고, 종(種)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인간중심으로 생태계를 쥘락펼락 하고 간다면 동물세계의 위기는 물론이고 결코 인류의 지속가능 또한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무한 확장과 약탈의 ‘종의 역사’는 하나님의 균등하고 보편적인 사랑, 동물을 아끼고 돌보시는 창조와 양육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때문이리라.
상징이 묵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충성된 종, 다른 종류의 좋은 친구, 반려 동물로서 인간을 대입해 본다면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는 부끄럽지 아니한가. 당신이 키우는 개보다 당신은 당신의 주인을 사랑하며 반기는가. 개만도 못하다, 금수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백번 싸겠다.
동물의 왕국에서 우리는, 동물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도 잊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올무와 덫을 치우고, 대자연의 품속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권리를 안겨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바람이기도 하리라.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
하나님을 위한 활동(Vita Activa)과 하나님의 신비를 관찰하는 명상(Vita Contemplativa)은 우선을 따질 무엇이 아니라 둘 다 꼭 균형 있게 필요한 신앙 요소렷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주소만 보더라도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지지받고, 선양되고 있는 형편이다. 교회나 목회자가 이른바 좋은 일 하는 것, 사회복지에 이바지 한다거나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세상에선 교회답다느니 박수를 쳐준다. 바깥 봉사활동을 적게 밖엔 할 수 없는 미자립 소공동체는 그렇다면 미성숙한 교회요 죽은 목회자인가? 이 땅의 하나님나라는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람들이 다채롭고도 다양한 모습으로 그의 나라를 풍요롭게 채우게 되어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는 법이다.
한국교회는 민주화 통일 운동등 바깥 활동에 공이 크지만 교회로서의 사회봉사, 이웃사랑엔 덩치만큼은 등한하였다. 물론 이 방면에서의 개척자는 역시 교회였다. 그러나 교회가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채 방치한 사회는 기틀을 마련하지 못해 형편없어졌고 승냥이떼가 노략질을 일삼아 이웃사랑을 위한 곡간은 비어갔다. 그렇다고 기도를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교회의 명상과 관상 기도는 기복신앙과 혈연 중심의 이기심 너머로 성큼 들어서지 못한 상태다.
관상기도 보다는 일사분란하게 바깥 활동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이 성서기록 시대에도 문제였던 모양이다. 봉사와 전도만큼 문을 안으로 닫아 건 침묵과 관상이 필요하다. 시편을 읽고 찬미를 통해 하느님 톺아보기, 자기 배꼽속으로 깊이 침잠하여 들어가 진지한 묵상을 통하여 내면 들여다보기, 이 둘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세상에 눈을 감고 자기 영생복락만을 위하여 기도 하자는 거 아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문제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관상기도를 하는 것,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보하며 기도하는 것이 시방 우리에게 모자라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는 사회봉사하는 시민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의료원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보호시설 복지관도 아니며 식당과 카페가 아니다. 교회를 이끌어라 세워진 목회자도 물론이렷다. 무엇이 주가 되어야 하는지 명심할 필요가 있단 얘기다. 대중까지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교인들은 기본으로 다짐할 필요가 있는 게 ‘교회는 교회!’라는 거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도소이며 교회는 교우들의 만남이요 모임이요 친교요 하나님나라 공동체다. 교회가 교회로 주저앉아 침체하란 말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 활기차게 부흥하고 성숙해지라는 말이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가 진실하고 진정어린 기도와 신심으로 뭉쳐지고 자라날 때 자연스럽게 교회는 이웃을 위한(향한) 지상최고의 선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비로소 교회는 봉사와 선교 실천으로 세상 또한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신비를 관찰하는 명상’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심축을 통한 균형을 잃으면 차가 논두렁에 꼬라박듯 교회도 도떼기 시장판이나 진배없이 되고 만다. 또 목회자는 영적인 힘을 지니지 못한 채 아무 매력도 능력도 없는 밋밋한 설교나 남발하게 되고, 충분한 사색과 기도와 독서가 없다보니 도둑처럼 표절 설교나 하게 되며, 갖가지 유혹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오만과 자만에 빠져 관상하고 묵상하는 자매형제들을 실천이 없는 신앙으로 규정하여 함부로 판단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그들이 여행하던 중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그분을 모셔들었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아우가 있었는데, 그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여러 가지 시중을 드느라고 분주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가서 ”주님, 제 아우가 저 혼자만 시중들게 버려두는데도 가만히 계십니까? 그더러 저를 도와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당신은 많은 일 때문에 걱정하며 부산을 떨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그 좋은 몫을 택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10, 38-42)
이 일은 베다니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마르타의 밥상 섬김, 마르타의 봉사활동을 비판하는 대목이라기보다는 마리아와 같은 관상, 관조, 영적 신비에 휩싸임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오늘날의 교회와 자매형제들에게까지 예시를 들어 당부하는 말씀이렷다.
자화자찬에는 향기가 없는 법이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 1-2) 눈에 띄게 주위에 알려서 선행을 하고,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거기엔 예수의 향기가 나풀거리지 않는다. 순수와 자유의 향기가 없다. 무언가 속물적인 자기만족과 과시욕과 꿍꿍이에 마침내는 악취를 감출 수 없다.
봄(seeing)이 오니 봄(spring)이 왔네
들은 봄이다. 꽃샘추위가 있다하나 그래도 눈이 녹은 땅에서 푸른 봄싹이 오종종 돋기 시작한다. 올해는 볼기 붉은 자두를 몇 개나 따서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까. 물고기가 얼음가면을 벗고 수면 위를 올라올 때 마시는 봄공기는 어떤 맛일까. 팝콘처럼 팡팡 터트려질 매화꽃은 어떤 향기일까.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봄세계는 과연 어떤 빛남이고 화려함일까. 물과 포도주로 나뉜 이 세계에서 나는 포도주 쪽으로 단박에 기울란다. 흥겹게 취해서 봄신명과 뛰놀란다. 들은 진정 봄이다.
고대 교회부터 지키는 주님탄생예고 대축일(3월 25일)은 부활절을 맞추어 잡은 날이다. 어린아이 메시아는 순결한 봄의 주인공이 아니런가. 그 아이를 보려고 겨울나그네는 설산을 목숨걸고 넘어온 것이다. 이새의 나무 그루터기에서 싹튼 새싹은 봄날의 상징, 수수하고 참한 부활의 상징 데이지꽃이 피어나는 시기이며 성모의 무릎 위에 앉은 예수의 손에 놓인 제비가 돌아오는 때이다. 도미니코 수도회에 따르면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그들의 수도복은 인류의 봄을 알리는 전령 제비의 깃털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신약성서는 ‘우리는 그를 보았다’는 봄(seeing)이 만물이 싱그럽게 피어나는 한해의 시작인 계절 봄(spring)과 맞아 떨어진다. 예수는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리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을 본 자신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요한 12, 45)
한동안 교회는 보는 것, 보는 문화가 강력했다. 문맹과 무지의 시대엔 보이는 것이 이기는 길이었다. 교회는 높은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온갖 성물과 성화를 세우고 걸기 시작했다. 결국 산통이 났고 교회는 더 이상 보는 것을 만들기 위한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제는 듣는 것이 강력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요 20, 29)는 말씀에다가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후 4, 18)는 말씀까지 보태졌다. 그래 프로테스탄트는 출발 때부터 교회 건물의 모든 보이는 것들을 치워버리고 강대상 하나 뎅그러니 한군데 놓고는 듣는 일에 집중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주님을 보는 그 봄(seeing)까지 치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와서 보라(요한 1, 46)하셨는데, 따따부따 말만 많고 딱히 볼 게 없는 단조로움과 메마름이여. 아들을 보고 믿는 자(요한 6, 40)는 모두 추방되어 사라지고, 사도적 전승전례, 에큐메니칼의 일치와 연대 대신에 개교회의 제왕적 교주들이 독점 해석하여 제공하는 이야기들(설교)만 비싼 값에 팔았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예수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제자단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분위기였다.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가 갑자기 예수가 사라지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맸다. 와서 보라고 했는데, 더 이상 볼 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도망쳤다. 그리고 바울파, 베드로파, 요한파, 아무개파 갈래갈래 파들이 생기고 ‘보지 않은 자’ 는 ‘본 자’가 되기 위해 엉뚱한 신비체험에 몰입하기도 한다. 진정한 목격자들은 따로 예비 되어 있었다. 바닥사람들, 그들이 속속 재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2천년이 흐른 지금도 예수의 진정한 후계자이며 제자들이고 부활현현한 몸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을 모두 부를 때 그들은 봄이다. 봄(seeing)을 사는 봄(spring)이다.
마침내 봄이 왔다. 우리는 이때에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해야 한다. 나아가 보면서 듣고, 들으면서 보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 9, 39) 우리는 영적인 맹인인가? 바리새인들은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대들면서 따져 물었다. ‘차라리 날 때부터 맹인이라면 좋았을 것을...’ 예수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를 보고도 그들은 예수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보고도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를 보고 더 분개하고 괴로웠다. 그들의 양심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닥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보았고, 예수를 대면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소경이요 귀머거리가 아닌 진리의 목격자, 참생명의 소유자가 되었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자 그들은 봄날에 뛰쳐나왔다. 들에서 산에서 강가에서 예수와 어루얼싸 만나고 예수는 그들에게 '엉덩이 팡팡' 해주면서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격려하셨다. 이후로 그들은 그들 자신이 봄이 되었다. 그들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오월 광주에서 봄으로 피어나고, 지난 2월엔 이집트 카이로에서 민주주의가 되고 나눔의 밥상공동체가 되고 봄이 되고 꽃이 되고 말씀이 되고 빛이 되고 알라가 되고 하나님이 되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보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우주 가득히 봄이 찾아올 것이다.
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다. 우리말 번역은 류시화 시인이 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과부와 재판관 비유’(누가복음 18, 1-8)를 문득 떠올렸다. 위로는 하나님을 두려워 않고 아래로는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판사가 한명 있었단다. 과부는 늘 그를 찾아가 억울한 사정을 들어달라고 졸라댔다. 재판관은 결국 너무나 성가셔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간 나무 없듯이 열번 찍어 안넘어간 재판관은 없는 거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실 것 같으냐?” 주님은 시방 그대의 상처에 대해 듣고 싶어 하신다. 아니면 주님이 먼저 상처를 드러내 보이실지도 모른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요한 20, 27) 도마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한지 꼭 여드레 뒤에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신, 부활 예수를 직접 만나게 된다.
서방 교회는 두발이 포개져 하나의 못에 박혔다는 전승에 의해 세 개의 못을 공인하였고, 동방 교회는 못의 개수를 네 개로 보는데 두발에 하나씩 못을 박은 것으로 이를 공인하고 있다. 이건 뭐 여담이고,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 아래로 내려오자 못을 뽑은 사람은 니고데모라 전해진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돌무덤에 모시고 와 몰약과 침향을 섞은 액을 예수의 몸에 정성껏 바르고 매장하였다.(요한 19, 39) 죽음에 이르게 한 상처를 조목조목 알고 매만졌을 니고데모 이후에 도마처럼 예수의 상처를 구석구석 살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물 조각가인 스다 요시히로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련나무를 깎아 나팔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목련인가 나팔꽃인가?” 예수의 상처를 만지고 예수의 상처가 바로 내 상처가 된 사람은 이후부터는 예수인가 나인가? 많은 예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로들 상처를 내어놓고 매 순간 가슴가득 초대하는 세계에서 그들 모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고 소망이 되었던 것이다. 너와 내가 따로 없음, 하나됨의 기쁨말고는 어떤 이기적인 기쁨도 존재할 수 없는 공동체!
비데에나 쓸 물대포를 국민들을 향하여 발사하는 정권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들을 위로하고 보살피는 책무를 버린 정권이렷다. 가난한 사람들, 배신당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아픔을 모르고서 어떻게 나라를 평안히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들, 재판관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우선하여 만나고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뿐만 일까. 사도직에 부름 받은 목사님들 신부님들! 도리어 상처를 내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게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 아니런가. 그대의 아픈 상처를 먼저 내어놓고 진실함으로 다가서라. 그렇다면 교우들은 감추고 싶은 비밀스런 상처까지 내어놓고 기도를 요청할 것이다. 소통이요 화통이 바로 하나님나라다. 하나님 나라의 위로가 그 안에 풍성하다. 손발의 움푹하게 패인 못자국과 창자국으로 너덜거리는 옆구리를 서로 만져볼 때 우리는 예수와 합일을 이룬다. 더이상 남남으로 나뉘지 않는다. 너와 나로 분절되고 분열됨이 아닌, 삶과 죽음으로 단절됨이 아닌, 이미 우리가 부활 예수요 주님의 교회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오! 놀라워라. 상처를 서로 안다는 것. 상처를 매만진다는 것! 하나 됨의 신비여, 하나 되는 부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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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은 목사, 시인, 수필가다. <참꽃피는마을>, <종소리>, <예수 동화>를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