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장 우리는 산중 게릴라
야훼여! 당신 장막에서 살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
허물없이 정직하게 살며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말하고
남을 모함하지 않는 사람, 이웃을 해치지 않고 친지를 모욕하지 않으며,
야훼 눈 밖에 난 자를 얕보되 야훼 두려워하는 이를 높이는 사람, 손해를 보아도 맹세를 지키고,
돈놀이하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 사람. 이렇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당신 머무시는 장막은 인디오의 티피 천막이거나 몽골의 들판에 하얀 점처럼 세워진 게르 천막, 아니면 중동 사막에 베두인이 밤추위를 피하려 세운 임시 천막이리라.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부도덕하게 세운 황금 성전은 절대로 주님 머무시지 않느니. 그 자신 성전이신 예수로 인하여 부당한 정치 자금줄과 초법적 환전상을 위한 성전 제도는 완전 파기되었고, 이제 이후로 사원은 신앙인의 무리가 모이는 대형 천막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그대, 애써서 돈 들여 주님의 집이라 떠들며 성전 짓기에 몰두하지 마라. 어둠과 고통을 마시고 사는 검은 족속이 되지 말아라. 폐광에 들어가 갱목을 지고 폭약을 아무리 터트린들 그저 시꺼먼 연기만 새나갈 뿐...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한 눈 파는 사이, 그대 영혼의 집은 그만큼 무너져 있으리라.
자울자울 졸던 밤하늘 별빛이 그대 침상에 찾아와 눕는 시간. 주님은 시방 거룩한 산에 머무시다 단잠에 드셨어라. 명창이 부르는 완창 판소리처럼 고단하고 지난한 이야기들이 죄다 꿈속에 잠길 시간. 정의를 지키고자 싸우며 나아가면 우리는 마침내 주님의 거룩한 산에 당도하게 되리라. 총사령관 체처럼 볼리비아 산중에 들어선 게릴라들. 수많은 적들에게 쫒기는 밤이라도 비로소 평안한 단잠을 잘 수 있으리라.
떠들고 놀다 지친 아이들이 집으로 하나둘 돌아오듯 당신의 거룩한 산에 모이는 이 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이러이러하다는 말씀이 본문에 나열되어 있다. 특별히 살펴볼 구절이라면 ‘비방’과 ‘돈놀이’에 관한 언급이렷다.
신약성서의 악마(디아볼로스 Diaboloj)란 ‘모함하는 자’란다. (디모테오 전 3:11; 후 3:3)
이웃의 심장을 쥐어짜듯 움켜쥐고 거짓부렁에 악담 험담을 퍼트리는 자들... 거짓되고 불의한 기사를 써대고, 쿰쿰하고 비겁한 댓글을 달며, 뒤에 숨어서 거짓된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이 바로 악마요 악령 들린 자들이다.
시대를 농락한 요부에게 사약사발이 내리듯 악마의 입을 다물게 할 자 누구인가. 제국 군대의 겨드랑이에 붙어 전쟁을 부추기고, 가난하여 약만 잔뜩 오른 반쪽 형제를 비웃고 숨통을 조르며, 뒤축이 닳은 신발을 질질 끌면서 밥벌이에 열중인 서민의 상권마저 송두리째 빼앗는 저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종지부를 찍는 자... 오늘의 메시아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는 용맹하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안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옵소서.” 오욕과 눈물을 머금은 자들이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오르는 산정. 앵초가 핀 그 숲길에 주님이 친히 기다리고 계시단다. 입술을 앙다물고 분노를 되새기며 걸어온 우리의 선한 게릴라 전투는, 무엇인가 세상을 한뼘이라도 옳게 바꾸고 간 투쟁의 세월이어야 하리라.
형제를 곤경에 빠트리는 돈놀이꾼, 고리대금업자들이 세상에 가득하구나. 고리대금업은 성서에 철저하게 금하는 일이다. (출애굽 22:25-27). 바빌로니아에선 30퍼센트를 이자로, 아시리아에선 50퍼센트를 이자로 물어야 했다고 한다. 반면 하느님의 말씀을 좇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선 이를 철저하게 금했다. 단기성 금융 자본에 놀아나며 자본식민지 민중들은 날이 갈수록 피폐한 살림살이다.
붉은 비가 쑥쑥 내린다. 온몸에 가난한 어둠이 묻은 노동자 예수는 소주에 절어 집으로 돌아가고, 물기 젖은 거리엔 찾는 이 드문 현금인출기가 홀로 깜박거리고 있다. 믹스 커피를 더운 물에 타 마시면서 예수는 몸속의 뱀인 헐은 내장을 달랜다. 구만리 아니 십만리 바깥에 봄이 오고 있는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공고해지는 시절이라지만 예수는 외로운 산등성이 집에서 향기로운 향나무로 만든 관에 눕기 전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오늘도 주먹을 불끈 쥔다. 선한 사람들의 기도가 별빛이 되어 하늘로 높이 뜨는데, 현금 인출기는 누전이 되어 파닥파닥하다가 꺼져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