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임의진 목사
도법스님 혜민스님 등
사회 각계 18명 이야기 담겨
이해인 수녀, 혜민 스님, 도법 스님, 이철수 화백, 김선우 시인 등이 법정스님을 만났다. 변택주씨가 쓴 <가슴이 부르는 만남>(불광출판사)에는 각계의 인사들이 생전의 법정스님을 만나 감화 받았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모두 18명이 등장하는 이 책은 변 씨가 지난해 출간한 <법정, 나를 물들이다> 후속편이자 완결편이다.
<법정, 나를 물들이다>가 작가가 법정스님을 만난 인연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가슴이 부르는 만남>은 법정스님과 만남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감동적인 삶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작가는 책에서 이해인 수녀가 만난 법정스님과 인연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1976년 ‘민들레 영토’라는 시집을 냈을 때 이미 ‘영혼의 모음’과 ‘무소유’로 알려진 법정스님의 글에 매료돼 책 한권 보냈는데 답장을 해 준 이야기다.
“수녀님 보내주신 사연과 시집 감사히 받았습니다. 어린왕자 촌수로 따진다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밤하늘 별을 볼 줄 아는. 누워서 ‘민들레 영토’를 몇 편 읽었어요. 시집을 뻣뻣한 자세로 읽을 수야 없으니까요. 맑고 투명한 수녀님 언어에 소리없이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영원한 사랑의 약속과 함게 시와 더불어 살겠다는 결의’에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인연 맺은 이해인수녀는 법정스님과 자주 교우한다. “스님은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하시고, 길상사에서 열린음악회를 하면 추기경님과 제가 초대받고, ‘맑고 향기롭게’ 모임 10주년 때 기념 축시를 제가 썼어요. 저는 스님을 찾아가면 ‘공양 주세요’했고, 스님이 제게 오시면 ‘성찬을 들자’며 서로 상대 종교 용어를 썼어요.”
‘선무당으로 살아가는 떠돌이 별 목사’로 불리는 임의진 목사와의 인연도 감동적이다. 임의진 목사는 다운증후군 환자였던 형이 안타까워 열일곱 살까지 ‘침묵’했던 소년이었다. 신학대학을 마치고 너무도 가난해서 교회조차 다닐 수 없는 마을에 내려가 볕만 좋은 마을을 ‘참꽃 피는 마을’이라고 부르고, 언덕빼기 볕만 좋은 교회를 ‘남녘교회’라 이름 짓고 목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법정스님이 가끔 다녀간 것이다.
“임 목사. 잘 지냈어요?”
“스님 덕분에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무슨 덕분. 늙은이는 기도발이 약해.”
“저는 기도는 않고 바흐는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스님 책에 보니까. 바흐를 좋아하시더라구요.”
“특히 무반주 첼로. 모든 게 무반주 첼로예요. 저 바람 소리도 그렇고 찻물 내리는 소리도 그렇지요. 단순 소박하고 검박하고 맑아요.”
10여년 전인 2003년 향학열에 불타고 있던 ‘청년 혜민스님’의 뉴욕에서 만남도 흥미롭다.
“법정스님이 맨해튼에 있는 서점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모시고 갔어요. 서점에 들어서시더니 ‘혜민수좌, 공부하면서 필요한 책들 골라와. 내가 사줄 테니까’ 그러시더라구요. 웬 횡재냐 싶어서 여덟권을 골라 가지고 두 손에 수북이 얹고 가다가 은사스님과 딱 눈이 마주쳤어요. 은사스님이 눈치도 없이 그렇게 많이 고르면 어떻게 하는냐며 ‘한권만!’이러시는 거예요. 그 말을 법정스님이 들으시고는 ‘괜찮아, 모두 사 줄 테니 다 가져와.’하시곤 여덟 권 값을 다 치르셨어요.”
작가는 법정스님이 살다간 인연의 흔적들을 우연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연한 스침은 있어도 우연한 만남은 없다. 만남이 결을 이룬다. 물이 논에 들어 벼를 살리고 산에 들어 푸나무를 살리듯이, 뜻 맞는 사람들이 만나 비벼 대며 서로를 빛내는 결이 바로 숨결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에서 작가는 법정스님의 필연적인 숨결을 따라 글을 엮어간다. 그 사이 독자들의 가슴은 촉촉이 젖는 감동을 받는다.
[불교신문 2890호/2013년 2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