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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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장판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9-02-20 (수) 14:18 조회 :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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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장판



 배고픈 호랑이가 참다못해 마을로 내려왔어. 두둥게둥실 애기를 키우는 집에서 말소리가 났지. “이놈의 징글징글한 가난. 떨어지지도 않고 벗어날 길도 없소.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 가난. 아이고 팔자야.” 엄마랑 애기가 우는 소리. 듣자하니 저보다 무서운 가난이란 게 있다는데 고건 뭘까. 요전날 서당 마당을 어슬렁거릴 때 훈장이 내뱉은 소리도 기억났다.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 진다. 그러나 적을 알면 백전백승 이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면 살 수가 있지. 쫄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된단다.” 이 말에 덜컥 놀랐던 일. 호랑이는  ‘알지 못하는 적 가난’이 두려웠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입춘 지나자 보일러 기름을 아껴보자며 전기장판 한 쪼가리 등에 대고 누운 어르신들. 깔밋한 새집에 전기장판이 놓인 방은 드물다. 대개 거우듬하고 울퉁불퉁한 방바닥. 냉기로 썰렁한 방은 어쩌다 한번씩 기름보일러를 돌린다. 아랫목이 자글거리던 옛집은 꿈속만 같아라. 나무를 해올 기운도 없고, 기름 값은 호랑이보다 무섭지. 
땟거리 장만하여 동태나 된장국으로 끼니를 삼는다. 전기장판에 누워 솜이불에 체온을 실으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늙으면 초저녁잠이 많아지는 법. 봄 아지랑이가 필 때까지 빨간 내복과 전기장판으로 의연하게 견디는 분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 나오는 꿈라도 따뜻하다... 종일 떨다 돌아온 날에는 온도조절기에 빨갛게 불이 들어온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세상 끝 옥탑에 보일러가 도는 기분.” 박소란 시인의 ‘전기장판’이란 시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간난이 할머니가 누워 잠든 전기장판. 생각하노라니 민들레의 사투리가 ‘말똥굴레’라 일러주신 권정생 샘의 오두막이 떠오른다. 민들레는 전기장판에 납작 누워있는 사람들 같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 다음부터 민들레를 보면 똥을 굴리던 말똥구리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 전기장판에 누워 하얀 솜이불을 덮은 할매들 모습을 동시에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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