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마을 사람들
유대왕 시드기야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뒤 앞잡이 삼아 세워진 왕이었다. 이집트와 바빌론 사이에서 왔다리 갔다리 시소 정치를 해야 했던 약소국의 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시드기야는 아마도 이집트의 외압 때문이라 싶은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걸 끊어버렸다. 그러자 기원전 587년,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성을 에워싼 뒤 엄청난 화력을 총동원, 유대 나라를 단숨에 집어 삼켰다. 성전은 불바다가 되었고, 공무원, 장교, 정치인은 모조리 즉결 처형되었으며 왕족 또한 샅샅이 몰살당했다. 붙잡힌 시드기야왕은 고문 끝에 눈을 멀게 만들어 축축한 감옥에다 가두었다. 그리고 백성들 대부분을 노예로 삼아 끌고 갔다. ‘빈천한 자’들은 따로 추려서 유대땅 포도원 농부로 남겨두었는데, 이렇게 하여 남겨진 자들과 잡혀 끌려간 자들, 이산가족이 생기게 되었다.
확고부동한 종교적 이질감 때문이었는지 그발(Chebar) 강가에 정착촌을 형성하여 유대백성 나름대로 바벨론에 굴종하며 살도록 하였다. 시편 137편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고 이야기 한다. 나라를 잃고 타향에 붙잡혀온 백성들은 강물이 흘러가는 강변 마을에서 이 험한 세월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고국에 돌아가 남겨진 가족들과 상봉하게 되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하였다.
떠나온 예루살렘을 기리며 흘리는 백성들의 눈물은 강물의 수위를 한 뼘 가량 높였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발 강가에서, 고난의 시절에도 낯을 돌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마 약속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도 했다.(겔 1:1-3:35) 백성들은 수시로 강가에 나와 반짝이고 글썽이는 강물을 보면서 고국을 그리는 향수에 젖었다. 모래언덕 강변이 유대 백성들의 판문점이요 망향의 집이요 예배당 구실을 했다. 신약성서에 보면 바울 사도가 옛 바벨론 땅 빌립보에 선교여행을 왔을 때 일이 소상히 적혀 있는데, “이 성에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행 16:12)라고 적혀 있다. 아마 이 구절을 비춰보아 그발 강가 어디쯤이 그냥 말 그대로 야외 기도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유대 백성들의 끈질긴 회개와 소망의 기도 때문이었으리라. 신기루가 한갓 꿈처럼 사라지듯 바벨론은 삽시간에 멸망하고 말았다. 막힌 봇둑이 터지듯 포로들은 그리던 고향땅으로 죄다 돌아갈 수 있었다. 해방! 시온의 백성들은 강줄기를 따라 고국으로 달려갔다.
소위 4대강 정비 사업(예측으로는 금방 5대강으로 늘듯, 섬진강까지)이란 대운하 억지 오기부리기 사업의 변종 위장술 격으로, 토건 이익 세력들의 대국민 속임수에 불과하다. 어머니인 강물을 도륙하고, 어머니의 정한수 기도처를 빼앗으려는 무례한 만행 앞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열강의 침략에 휘둘리다 나라가 두 토막이 나서 분단되어 반세기, 제국 앞잡이들의 농간에 아직까지 자존심도 없는 비굴한 정신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작금의 민족적 현실이다. 군사 작전권은 물론 우리 고유문화까지 서구열강의 마수에 쥐락펴락 하게 된 처지는 그야말로 실향민과 다를 바 없지 아니한가. 이쯤 ‘징하게’ 복속의 수난사를 경험하다보면 노예근성, 제국의 쫄다구로 굽신대면서 살아가는데 도가 틀만도 할 텐데, 이건 아니라고, 더는 이래서는 아니 된다고 용케 깨어난 조선 사람들이 있다. 그 조선 사람들의 기도처 또한 저 도도한 낙동강, 영산강, 한강, 금강, 섬진강일 터. 저토록 유유한 강의 굽이치는 물길들을 제국의 앞바다까지 직선화, 복속화 하겠단다. 시멘트를 쏟아 부어 바벨론의 자본신당(神堂)을 만들겠단다. 백성들의 기도처를 빼앗아 거기다 관광지 놀이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성소 회복에 대한 불굴의 희망과 달구어진 가슴에서 비롯된 신앙적 투쟁은 내팽개치고, 유람선 뱃놀이 따위나 즐기자는, 바벨론의 충성스런 노예들, 그쪽에서도 목사들과 장로라는 분들이 앞잡이더라. 대충 이쯤에서 안주하고픈 우매한 무식쟁이들과 구질 맞은 앞잡이들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맞닥뜨려서야, 그때서야 후회를 할 참인가.
찢기는 가슴안고, 광야에서
은둔계의 두목격인 도연명이 쓴 『오류 선생전』에 보면, 자기 자신을 빗대 이런 세상살이를 희구하더군. “선생은 어디 사람인지 모른다. 본명도 확실치 않다. 집 옆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기 때문에 오류선생이라 자칭하고 있다. 심성이 조용하고 묵묵하며 명예나 부를 따라 살지를 않는다. 책 읽기를 즐겨하지만 그렇다고 철저히 분석하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제 기분에 딱 들어맞는 구절을 만나면 기뻐서 견디지를 못하고 심지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타고난 주정뱅이지만, 가난해서 항상 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연명의 일생이 어떠했던가. “전에는 줄곧 굶주림에 시달렸기에 쟁기를 내던지고 벼슬자리에 나섰다. 그래도 가족을 부양하지 못했고 노상 추위와 굶주림에 얽매였다. 그때 나이 서른을 바라보았고, 뜻과 마음에 부끄러운 바가 많았다. 마침내 나의 본분을 다하고자 옷 탈탈 털고 시골로 돌아왔다.” 그가 말한 본분은 은둔 자족의 삶이었을 것이다. “쌀 닷말 얻으려고 시골 관리들한테 굽실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석 달 만에 관직을 벗어던지고 남긴 사직의 변이란다. 전원시인이라고 하여도 퇴폐적인 전원문학만을 양산한 그가 아니다. 썩어가는 시대를 향하여 바른 소견을 내놓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다.
예순 세 살, 세상을 유쾌하게 버리기 전까지 그는 일개 농부이자 시인으로 자족하였다. 그의 꿈바라기였던 오류선생처럼 명예나 부를 따라 살지 않고, 은둔과 자유, 저항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갔다.
세례자 요한, 나는 그에게서 이 오류 선생, 도연명을 만난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막 1:6) 야생인간 대자유인 요한의 짧은 프로필이다. “즈가리야의 아들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눅 3:2) 광야에서 요한은 진실하게 하나님의 이야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마도 김민기 아저씨의 <아침 이슬>,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노래를 부르며 푸른 너럭바위 위에서 진실한 동지, 후견인 예수를 기다렸을 것이다. 변두리 광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불멸의 메시아를 말이다. 그런대도 왜들 사람들은 중앙, 중심, 복판, 알짜 금싸라기 땅을 그토록 좋아하는 걸까. 거기서 하나님을 찾을 수,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도심 복판에다가 빌딩을 임대하거나 구입하여 대자리를 편 다음, 노상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는 예수는(예수 대리인들까지) 혹시 가짜 예수, 가짜 대리인들이 아닐까? 혹시, 설마, 그런 의심이 드는 날엔 인생 핸들을 변두리 광야, 한적한 시골로 꺾어보라.
예수라는 나무
우리 집엔 무화과나무가 있다. 마당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무화과나무나 유자나무는 겨울 한기를 버티기 무척 괴로워하는 따뜻한 나라 출신 나무다. 그래서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엔 짚더미를 이불삼아 친친 감아주기도 한다. 배고픈 새들은 무화과나무 가지 위에 자주 앉는다. 지금이 무슨 여름이라도 되는 줄 알고, 무화과 열매를 어서 맛보게 해달라며 나무를 조른다.
“나타나엘이 예수께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나타나엘은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그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요 1:48-50)
나타나엘은 아마도 배고픈 사람이었을 게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건 아닐까? 그에게 예수는 무화과 열매보다 달고 배부를 과월절 빠스카(pascha)의 떡과 술이 되시마 약속하셨다. 무슨 팔자가 그리도 술술 잘 풀리는지, 예수의 밥상공동체에 들어가게 생겼으니,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 보다 백배 천배 잘된 일이다. 이제 나눔의 밥상공동체 안에서 나타나엘의 심령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기에.
예수 곁에는, 어선이 가라앉을 만큼 일일 어획량을 자랑하던(?) 베드로와 같은 잘나가는 선주도 있었다. 그러나 자발적 가난을 통하여 ‘균등한 가난’을 이루면 모두가 배부르고 행복할 수 있다는 예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작정했다. 자기 동네에선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사람들, 허나 누군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배고프기에 그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예수 나무 아래로 나가면 모두가 배부를 수 있음을 그들은 믿었고, 직접 하나님나라를 실천했다. 하나님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사람들(빼앗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대는 시방 무슨 나무 아래 서 있는가. 그 나무 아래서 열매를 기다리며 하늘만 쳐다보다가 오늘도 목뼈가 욱신거리는 그대여. 어서 예수 나무 아래로 오라.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플 따름인, 가엾은 현대인들이여.
사랑하지 않은 죄
죄인들이 너무 많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죄인이라면 감옥에 가 있어야지 왜 백주대낮에 밖을 돌아다니시나. 알량한 죄사함 거듭남 따위로 한건 올리는 사이비 집단들도 보인다. 자기반성이 지나쳐, 원죄며 대죄며 사형이라는 형량을 받을만한 중죄를 뒤집어 쓴 죄인으로 전락시키는 게 한국교회다. 이 죗값을 치르려면, 헌금 많이 하고 하나님 종들을 ‘럭셔리’하게 떠받들어야 한단다. 그래야 천국 직통을 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게 곧이곧대로 먹혀들어가는 걸 보면 참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언감생심 천국이 뭐고 지옥이 또 뭐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대도 방치하여 지옥구덩이로 만드는 사람들이 말이다.
안식일 법은 모든 가난뱅이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구실을 했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여자를 죄인이라고 비난했고(요 5:11) 안식일이지만 병을 고쳐 볼까 몰려든 사람들을 욕했다.(눅 13:14)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막 2:27) 예수는 안식일 법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율법학자들 바리사이파들과 대립했다. 예수를 죽여 없애자는 이야기도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요 5:18)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하질 않던가. 당시에도 가진 자들, 부자들은 죄인이 아니었다. 손 하나 까닥 않고 안식일 법, 절대 휴식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몸종 노예, 날품팔이, 공장 노동자, 장애인, 농부, 거지들은 그날이라고 별다른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사실 하나님은 그런 육체노동자들을 위해 안식일을 주셨는데,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회당에서 두루마리 성서가 읽혀지던 때도 이미 안식일 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더욱 죄인으로 몰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종교란 게 얼마나 지배 이데올로기, 가진 자들 편에서 작동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예수는 하나님을 형사님, 경찰서장님, 검사님, 판사님, 교도소 소장님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어버이로 다정히 모셨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는 우리들에게 자매 형제, 길벗이라 부르셨다. 예수는 아마 이렇게 이야기 하셨을 것이다. “내 앞을 걷지 마라. 내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 뒤를 걷지 마라. 내가 인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다만 나와 함께 걸으라. 우리는 친구 사이니.”(북미 원주민 소크 족의 격언).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서 죄인이 아니다. 스스로 양심에 거리끼고 잘못된 경우에 회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 옳겠지만, 매사 죄인 의식에 찌들어 벌벌 떨면서 살 까닭이 전혀 없다. 죄가 있다면 죽도록 사랑하지 않은 게, 못한 게 죄다.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을 당장 부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죄인이다. 이름을 담고 바치는 기도, 최소한 전화 한 통화나 편지 한통이면 이러구러 쌓인 죗값 따윈 청산된다.
(2009. 3. 월간 기독교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