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 수필창고 > [임의진의 숨쉬는 말씀] 이름 없는 날/ 월간 기독교 사상

주기도! 가슴 뛰는 노래, 눈물겨운 기도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생명의 바람이 어허얼싸 막 불어온다 얼싸 좋네 아 좋네 생명바람 에헤라 부활이로구나/ 번개 치고 천둥 치니 죽음의 세력들이 어허얼싸 다 쫓겨간다 얼싸좋네 아 좋네 부활바람 에헤라 함성이로구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성령의 바람이 어허얼싸 막불어온다 얼싸좋네 아 좋네 예수 바람 에헤라 복음이로구나/ 부활의 바람 생명바람에 삼팔선 철조망이 어허얼싸 막 녹아난다 얼싸좋네 아 좋네 통일 바람 에헤라 통일이로구나…. "

이른바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군밤 타령을 개작하여 신명나게 불러재꼈던 ‘예수 타령’,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오늘 이 하늘 아래 맘껏 불어보고 싶은 바람인데, 촛불집회 이후 거리엔 정의의 함성이 사라지고 너도나도 기운 빠진 얼굴이 되어 버렸다. 정부의 보복조치, 경찰의 신공안정국 조성, 민주주의와 통일 열망은 파행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이를 오토카니 바라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일부 대형 교회와 보수교단 목회자들이 교계와 세계를 넘나들며 이 반역과 치졸한 난정을 주도하는 동력 구실이나 하고 있으니 뜻있는 백성들의 원성은 하나님의 심장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오래전 1925년에 ‘복음교회’라는 조그만 자생교단이 하나 이 땅에 탄생했는데, 그 때 불린 다음의 노래는 참 의미심장도 하다. 이 노래도 앞서 예수 타령과 함께 다시금 불러보고 싶은 노래 가운데 하나다.

1. 아! 신앙혁명이 가까웠구나. 아! 신앙혁명이 이르렀구나. 현대의 생명 없는 신도들아. 허위에 날뛰는 교우들아. 말라빠진 교리만 붙잡고 있고 생명의 신앙을 내버렸구나.

2. 아! 신앙부흥은 이르렀구나. 아! 신앙부흥은 이르렀구나. 회개와 부활 없고 신앙 죽었다. 윤곽과 터만 닦고 예수 없구나. 신앙의 생명은 고목이 되고, 현하의 교회는 사막이 됐네.

3. 아! 하늘나라는 가까웠구나. 아! 진리세계는 전개되었네.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 나와서 광명한 하늘 길로 빨리나가자. 신앙의 생명은 혁명적으로! 늘 기도 하면서 힘써 싸워라.

(신앙혁명가)

‘혁명’이라는 낱말이 지금은 그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하지 못하는 식상하고 시대착오적인 깃발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하늘 새 땅을 희망하며 횃불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난 오늘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요 노래 한곡조를 생각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원어에는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바로 그 노래, 그 기도.

예수는 이 노래를 눈을 감고 나지막이 부르다가 동질감과 연민에 휩싸여 아마도 주루룩 눈물흘렸을 것이다. 가난한 무리들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는 얼마나 격정어린 대목이런가. 비정규직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노래가 아닐 터. 우리의 영혼은 지금 얼마나 굶주렸으며 유리하고 방황하는가 말이다. 수없이 대망하던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 나라’는 이다지도 멀고 더디단 말인가. 그래도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노래를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노래방에서나 부를 노래였다면, 교회 안에서만 부를 그딴 노래였다면 아예 알지도, 배우지도 말았어야 할 노래들!

이 증오와 허무의 시대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고 악에서 구해달라며 목청껏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되자꾸나.

이 노래, 이 기도는 우리의 귀를 씻고 우리의 마음마저 씻어 새사람으로 새누리로 거듭나게 하여줄 것이리라.

꿈 깨!

통도사에 가면 극락암이라고 있다. 거기 추사의 글씨체로 현판이 하나 걸려 있는데, 대각몽(大覺夢)이라 적혀있다. 한마디로 “꿈 깨!” 뭐 그런 말씀이렷다. 허망하고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시방 가장 절실한 신앙행위 아닌가 싶다. 이 땅에서 사는 삶에 열중하고 열정을 바치되, 한편 부질없는 꿈이라는 여기고, 부귀영화 입신양명에 몰두하여 욕심꾸러기로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참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세워야 할 때이다.

옛날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 당나라 사람 노생이란 여행자 이야기다. 그가 한단지방을 여행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신선도의 맹주 여옹선사를 만나 자신이 평소 가져왔던 소원 세 가지를 빌게 되었다. 첫째, 돈 많은 부자로 살고 싶다. 둘째, 출세하여 이름을 드날리고 싶다. 셋째, 절세미인을 얻어설랑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소원을 듣고 있던 여옹선사는 편백나무로 깎아 만든 목침 하나를 내어주며 “소원이 별것도 아니군. 내가 들어줄테니깐 일단 먼 길 오느라 고생이 참 많았으니 좀 쉬게나. 자네가 쉴 동안 나는 저녁밥을 짓도록 하겠네.” 목침을 베고 누운 노생은 금방 잠이 들었다. 여옹선사를 만난 이후 노생은 인생 팔자가 확 펴게 되어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예쁜 미인을 아내로 얻었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그만두고 벼슬자리에 올라 크게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금은보화가 광마다 가득 찬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았으니 세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루게 된 셈이었다. 그가 인생을 풍미한 뒤 손주들을 받아 안으며 팔순 잔칫날을 맞았다. “이보게! 어서 일어나 밥이나 먹자구.” 버럭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난 노생. 아뿔싸! 잠깐의 달콤한 꿈이었던 것이다.

폭풍우 치던 밤 뱃고물을 베고 주무시던 예수, 곤한 단잠을 자고 꿈에서 깬 다음,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였다. 다만 이전의 평온하던 그 바다일 따름.(막 4:35-41)

꿈에서 깨지 않았다면, 성난 풍랑이 배를 덮치고 일행은 모두 바다에 빠져 물귀신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꿈 깨! 이제 앞으론 너도 나도 그런 소리를 하자. 꿈 꿔!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모르겠지만,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눈만 감았다하면 코 골며 꿈꾸는 사람들에겐 그만 해도 되는 소리다. 꿈 깨! 이 소리를 언짢게 들었다간 그대로 꼴까닥! 용궁 구경을 하게 된다.

이름 없는 날

창세기를 펼치면, 한 처음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세상이 만들어진 다음 한동안 이름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름이 없다? 세상이 텅하니 빈 ‘공(空)의 시대’가 있었다는 소리렷다.

온갖 잡동사니로 방이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하여 그걸 죄다 밖에 내던져 땔감으로 태워버린다고 그대 방이 ‘비어 있음’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처음 이름이 없었던 때를 생각해 보자. 약속된 이름을 버리고, 아니 깔끔하게 이름을 지우고 바라보면, 이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그대 방은 그 순간 텅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방으로 돌변한다. 저것은 책이 아니다.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저것은 그릇이 아니다. 이것은 이불이 아니다. 이름을 붙이지 말고 바라보자. 너는 여자고 나는 남자고 너는 어른이고 나는 꼬맹이고 너는 아무개고 나는 임의진이고 그런 이름 모두 버리고 바라보자. 거기 아무도 무엇도 없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당신도 그 텅 빔의 신비를 한번 맛보아 보기를….

이름을 갖게 된 순간부터 세상은 조각조각 갈라지게 되었다. 이름을 짓고, 이름으로 불릴 때 그 존재는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지만, 한편 이름 때문에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이 되었다는 내 얘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을터.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만드시고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될 텐데 굳이 아담에게 이름을 짓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새로 생긴 놀이동산 에덴랜드의 신입사원 아담에게 그런 막중한 일을 시킨 이유는? 아담이 무슨 작명·사주·관상을 보는 점집 도령도 아니고 말이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진다. 당신이 내 이름이 아니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내가 당신 이름이 아니라니 그것이 또한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린 그냥 이름을 부르지 말자. 모든 것이면서 모든 것이 아닌, 내 텅 빈 이름없는 사랑아.

로댕과 창세기

진각국사 혜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못가에 홀로 앉았네. 물 밑의 한 사내와 서로 만났네.

둘이 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 건 그 마음과 이 마음이 훤히 비치는 때문.

오늘 나는 로댕의 조각상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물 밑의 사내와 같은 두 마음이 서로 말없이 미소 짓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조각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며 “참 좋다” 감탄사 한마디 바람결에 날려주고….

프랑스 파리에 가는 일이 생기면 꼭 방문하는 로댕 박물관. 지난 번에 그곳을 찾았을 땐 『릴케의 로댕』이라는 책이 내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시인 릴케가 로댕의 조각상들을 흠모하여, 그 신비에 마음을 흠뻑 적시고서 지은 아름다운 산문들…. 나 또한 그 마음과 하나가 되고자 정원이 바라보이는 계단에 앉아 책을 펼쳤더니 누가 등 뒤에서 호기심 많은 눈으로 넘어다본다. 안경을 벗은 참새 두 마리. 저들도 하나님의 조각상이렷다. 불어인줄 알았다가 처음 보는 한글에 고개를 갸우뚱. 새들은 다시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천지만유만물을 보라. 저 아름다운 조각상들이여. 로댕은 피땀어린 작업 끝에 그의 자택을 조각상으로 가득 채웠고, 하나님은 지상과 천상을 그의 장쾌하고도 기기묘묘한 조각상으로, 그것도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으로다가 가득 채우셨다.

사람과 하나님, 그대의 생애에 이런 멋진 상대가 있다는 것, 조물주가 계시다는 자각은 참말 놀랍지 아니한가. 크게 한번 미소 지으라. 인류는 물론 생명 가진 모든 조각상을 있게 하신 그 위대한 조각가를 만난 반가움으로.

스승 소리

요즘 세상은, 복음화 성시화를 굳이 하지 않아도 교회 다닐 만한 위인들은 죄다들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교회로 출퇴근한다. 교회가 흔하니 교인도 흔해졌다. 원두커피를 파는 가게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데, 그렇단들 어디 지난 세기 한국개신교의 부흥성장사만 할까. 교회, 목회자, 교인들 수가 많다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설교가 ‘끝내줘요’든 카리스마가 팡팡 넘치든, 교회의 지도급 우두머리들은 과분한 대접과 공경을 받는데 익숙해졌다. 이 즈음 다시 한 번 여미어 보아야 할 말씀이 있으니, 이 귀한 쓴 약을 부디 사양하지 마시길.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자매형제들이다.(마 23:8)

총회장, 감독, 주교, 목사, 신부, 수녀, 신학교수, 장로, 권사, 집사, 반사, 속장…. 교회엔 자칭 타칭 지도자요 스승들이 차고도 넘쳐나는데, 진리의 길, 진실의 길을 걸어가는 길동무, 자매형제들은 되우 드물다는 것이 너도나도 한목소리다. 다른 집안 말씀이긴 해도 각별히 새겨들어야 할, 숫타니파타에 따르면, “제 아무리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고 단식과 고행을 한다고 해도 그 마음에 진실의 씨앗이 없다면 그는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꿍꿍이 거짓부렁이 난무하고, 허위와 가식이 가득하니 무슨 좋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귀에 한마디, 눈에 한 구절 새겨지지가 않는다. 부덕하고 부실한 신행과 얕은 신심 위에 신성의 탑을 쌓아본들 누가 진실로 고개를 숙이며 공경하고 따를 것인가.

진실하게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작고 순박한 인연들이 귀한 세월이다. 우리에게 오늘 꼭 있어야 할 자매형제애가 드물어 감은 교회의 절대비극이요 신앙인으로서는 고독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일치와 헌신의 에큐메니칼 정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형제된 인연을 부정하고 독불장군들만 날로 넘쳐나니 이를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미끄럼틀을 타고 어서 내려가자.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지 말고, 좀 유연해지고 다스워져야 한다. 그리고 냉큼 바닥사람들의 진실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저 밑바닥에서, 누구 말마따나 완장 계급장 다 떼고 자매형제로 소탈하게 만나야 한다. 미끄럼틀을 타보셔서 아시겠지만, 내려가는 일은 적이 두려워도, 일단 재미가 있다.

나사렛 사람

유대의 골짜기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고을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를 보통 나사렛 사람(막 1: 24; 10:47)이라 불렀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의 구석진 하층민들의 동네다. 세포리스라는 도시는 남동쪽으로 반나절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이 도시는 반란의 거점이었는데 예수가 나기 4년 전에 헤제키엘의 아들 유다가 민중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 그 대표적인 로마항거사다. 이 때 세포리스는 그야말로 로마군의 압도적인 맹폭격을 당했고, 주민들은 노예가 되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 아마도 나사렛 사람들까지 연루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예수는 그 와중에 잉태되어 “나사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 4)라는 모멸찬 소리를 들으면서 서럽게 자라야 했다.

훗날 예수의 제자들까지 ‘나사렛 도당’으로 불리었고, 나사렛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바울 사도까지도 ‘나사렛 도당의 괴수’ 라는 죄목으로 옥살이를 감내해야 했다.

지연, 학연 등으로 꼼짝할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예수를 누가 그리스도로 옹립하여 따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면 아찔할 따름이다. 게다가 예수는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에도 못 미치는 학벌에다(아예 무학) 오죽잖으면 노총각에 라이센스도 없는 ‘야매 랍비'에다가 집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여기저기 빌어먹고 다니던 탁발 수행자였다면?

나는 천대받는 전라도 갯뻘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고, 세포리스처럼 미제국과 신군부의 야합 작전으로 학살과 점령의 수모를 겪어야 했던 오월 광주에 직간접적인 인연의 거처를 두고 살아가는 중이다. 나사렛 도당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거 같다. 그대가 이런 지연의 바깥이라면, 최소한 ‘나사렛 도당의 괴수’ 바울 사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예수의 친구로서 면목이라도 조금 서지...

(2009. 2 월간 기독교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