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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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된장국/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8-09-26 (수) 13:52 조회 :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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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  



잠수했다가 나와도 절대 물에 젖지 않는 건 갈릴리 예수님하고 백두산 천지 산신령 할아버지 뿐일 게다. 백두산 천지를 보면 우리는 눈두덩부터 축축이 젖고 만다. 백두산에서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리던 북쪽나라 위원장은 이번 추석에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나는 뒤늦게 찾아온 몸살기운에 누워 지냈다. 고위급 백수의 3대 필수품이라는 ‘안막 커튼, 국가대표 추리닝, 세줄 그어진 어딜갔스표 슬리퍼’를 가까이했다. 명절 백수의 최고 휴양지는 역시 이집트. ‘이틀’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이집트 여행코스. 다단계 피라미드 광고나 쳐다보며 스핑크스처럼 엎드려 있다 보면 연휴쯤 후딱 지나간다. 다음은 동남아. 동네에 남아있는 아이들과 노는 것인데, 피자라도 한판 시켜줘야 놀아주겠지. 돈이 좀 나가는 휴양지라 패스. 집집마다 여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 화장을 하고서 왜 거기다 선글라스를 끼는 걸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여인네의 속마음이여. 여인들은 이제 더는 ‘집사람’이 아니다. 부인의 요리솜씨로 살아가던 남자들은 멸종위기단계 동물. 여인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집밖으로 나간 뒤 세상은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라. 내 이럴 줄 알고 된장국을 아주 잘 끓이는 법을 배웠다.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끼니쯤 때울 줄 알아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보노라니 텔레비는 역시나 먹방이더군. 시뻘건 초고추장이 등장하고 시뻘건 입술로 목젖이 보일만큼 입을 벌려 먹어대는 우스개 꼴들을 보고 있자니 그분의 자괴감까지 생각이 나더라. 이 나라도 모자라 해외로까지 먹방은 이어지고 있더군. 싱싱한 물고기를 보여주자고 칼로 등짝을 째니 파르르 몸을 떠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사내들이 집밖에 나가 해먹는 요리가 죄다들 무법하고 무례하며 자랑에 급급하다. 뭐가 그리 저들을 배고프게 만들었을꼬. 
음식에도 분명 예의가 있을 텐데. 참람한 시대(?)에 촛불을 켜듯 소소한 된장국을 끓여본다. 반찬은 없어도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릴 수 있는, 마주 앉은 벗하나 있으면 그만. 된장국에 김치에 밥을 한 그릇. 속이 다 개운해라. 아무리 잘 먹어보아도 이만큼 담백하고 이만큼 순한 맛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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