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예언자와 바이칼호수
임의진 (시인)
유목민의 기차는 말떼와 함께 초원을 달린다. 몇날 며칠 지겹도록 기차만 탔다. 내 나라 친근하고 수월한 무궁화호, 새마을호, 용산역과 목포역 그리고 서울역과 부산역을 오가는 고속열차 KTX가 아니라 새하얀 눈벌판 유라시아를 횡으로 질주하는, 낯설고 불편하며 때묻고 낡은 침대칸 기차 시베리아 횡단열차 TSR(Trans-Siberian Railways). 기차는 중국의 베이징이나 몽골의 울란바토르역, 시베리아의 동쪽끝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출발하여 자작나무가 우거진 정거장 울란우데,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우며 바이칼 호수를 끼고 섰는 추방자들의 도시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에서 제일 크고 높고 화려한 도시 노보시비리스크, 유럽의 입구라는 예카테린부르크, 마침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입성하여 유럽 전역으로 여행자들을 실어 나른다. 침엽수림 타이가 지대엔 하늘과 땅을 잇는 새하얀 대리석 기둥 자작나무와 배고픈 청설모들이 좋아하는 잣나무숲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유리창문 밖으로 기나긴 철 길, 오래된 목재 가옥들과 다르차에 일하는 농부들, 지구별 담수의 20퍼센트를 차지 한다는 바이칼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르쿠르츠가 가까운 것이다.
내 여행 보따리엔 볼세비키의 전사 레온 트로츠키의 생애를 나직이 풀어낸 아이작 도이처의 영문판전기문이 담겨 있었다. 무장한 예언자 (The Prophet Armed), 비무장의 예언자 (The Prophet Unarmed), 추방당한 예언자 (The Prophet Outcast) 이상 세 권. 이 책엔 트로츠키의 젊은시절 시베리아 유배 이야기가 소상하게 실려있다. 당시 트로츠키의 이름은 브론 슈타인, 유배지 관할 구역인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나룻배로 갈아타고 레나강을 따라 건널 때 풍경이 재미 있다. 나룻배에 같이 탄 스콥치 유배자들이 전통복장, 그러니까 머리를 뒤덮는 하얀 수도복을 걸치고 막춤(정제되지 않은 마구잡이 춤)을 추는 장면은 브론 슈타인의 원통한 유배 감정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스콥치는 러시아 정교회의 기괴스러운 분파가운데 하나다. 스콥치 사제들은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처럼 스스로 남성을 거세하여 애욕을 완전히 끊는, 과격하고도 괴이한 분파다. “성불구자라도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뜻에 맞는 일을 하고 나와 맺은 계약을 굳게 지킨다면 내 집, 내 울타리 안에다 그들의 기념비를 세워 줄 것이다. 어떤 아들 딸이 그들 아름답게 내 이름을 남길 것인가!"(구약성서 이사야 56장 4-5절)라는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스콥치들은 이미 오래전 정치적 유배를 받아 시베리아 골짜기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트로츠키의 유배지 우스트쿠트는 이들의 주된 거주지였다. 한때 사금 채취가 활발할 때엔 이 마을도 북적거리는 시베리아판 황금도시 엘도라도였다. 그러나 쇄락을 거듭, 농부들의 움막만 백여채가 고작이었고 주변의 작은 마을은 스콥치들의 안식처였다. 이 외롭고 추운 시베리아 소읍에서 브론슈타인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나게 된다. 스톱치들의 위로와 자족하는 삶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이며 사회혁명가인 그는 도무지 흔들리지 않는다.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물을 녹여 마시며 그는, 세상을 한판 뒤엎고 싶었다. 바이칼 찬물로 자본가, 지주, 왕조의 세상을 차갑게 정신차리도록 해주고 싶었다.
암살의 위협을 느끼던 1902년 여름, 드디어 그에게 탈출의 기회가 왔다. 건초를 담은 밀수레속에 숨어 기차역이 있는 이르쿠츠크로 향하던 날, 우스트쿠트에 있는 유형지의 방엔 밀짚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그를 대신하여 잠들어 있었다. 혁명동지들이 마련해준 위조여권엔 오데사 감옥에서 알게 된 간수 이름을 생각 나는대로 적어 넣었다. 그 이름이 바로 트로츠키였다. 그해 10월, 예언자가 불쑥 얼굴을 나타낸 곳은 런던 시가지였다. 킹스크로스 골목 허름한 벽돌집엔 레닌과 그의 아내 크루프스카야가 잠시 머물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탈출에 성공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와 레닌의 첫 만남은 훗날 러시아대륙을 붉은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무대로 바꾸어 놓는 태풍의 기원과 같은 만남이었다.
나를 실은 기차는 자작나무 울타리를 넓게 두른 이르쿠츠크역에 드·디·어 당도했다. 바이칼호수를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내려 차편을 이용해야 한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앙가라 강물, 금방 쓰러질 듯 이끼가 선 낡은 목재 가옥과 보드카 냄새가 진동하는 뒷골목들, 갖가지 색상의 창문 틀에 걸터 앉은 늙은 비둘기떼, 러시아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레닌 동상과 거리의 화가들,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하는 백색계 미녀들의 화사한 미소, 강인하고 진중한 설원의 사내들은 마치 야생늑대를 닮아보였다. 여기에만 있는 호수물고기 오물과 개구쟁이 물개 네르파(놀라워라, 호수에 물개가 살고 있다니...), 무엇보다 러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집단 데카브리스트의 흔적은 이르쿠츠크의 정신이요 시베리아에서 가장 눈물겨운 사랑이야기의 족적이다.
데카브리스트란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 혁명가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1812년 모스크바에 진격한 나폴레옹 군대를 가까스로 격퇴한 뒤 파리까지 입성한 러시아 장교들은 프랑스의 근대화된 모습,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에 깜짝 놀랄 수 밖에. 그들은 러시아로 다시 돌아와 농노제를 폐지하고 황제권력을 무력화 시킨 후 입헌군주제를 세우려고 공모하였다. 그러나 1825년 그들은 전원 발각 체포되었다. 5명의 고위 장교들이 사형에 처해지고 120명이 시베리아 깡촌 이르쿠츠크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르쿠츠크로 유배를 온 데카브리스트들은 이 외롭고 버려진 도시에 훈기를 불어 넣으면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이끌어 낸다. 노동울력이 끝나는 주말마다 조촐한 음악회를 열고 시낭송회를 가졌다. 사랑하는 남편을 버릴 수 없어 귀족의 딸들이었던 아내들이 속속 이르쿠츠크에 당도한다. 반역자를 버리고 다시 재혼을 하든지 아니면 모든 귀족으로서의 신분을 버리고 유배지로 따라가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명령 앞에서 아내들은 유배자 남편들을 택한다. 귀족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명예, 부까지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온 머나먼 시베리아 유배길...
바이칼이란 타타르말로 바이쿨, 뜻을 풀자면 풍요의 바다 정도랄까. 몽골어 ‘뷔게’나 브리야트족의 말 ‘뵈’는 ‘바이’가 어원이다. “베푸는”, “위대한”, “높은”, “큰”, “풍요로운”의 뜻을 가지고 있는 바이는 무당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부르는 북한 사투리 아바이도 같은 뜻이 아니겠냐는 한글학자의 의견도 재밌다.
“칼”은 괼, 골, 굘, 곌에서 나온 말로 “호수, 강물, 계곡물”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골짜기. 골(gol)은 물을 담고 있는 호수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 종합해보면 바이칼은 “샤먼의 골", 무당의 호수란 뜻이다. 흉노족은 바이칼을 “텡기스”라 불렀다. 텡글은 하늘이라는 뜻. 흉노에서는 왕을“텡리"라 했는데 하늘의 아들이란 뜻이다. 단군의 원래말 “당굴"의 어원도 텡그리에 있다. 바이칼이 우리 겨레를 낳은 어머니요 아버지호수라는 말은 누구 한두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바이칼에서 비롯된 한겨레 단군의 자손은 한반도 해뜨는 아침의 나라에 머물고 있으나 결코 우리가 앞서 살았던 대륙을 잊어버려선 안된다. 우리 겨레의 시원이요 발현지임이 분명한 바이칼 호수를 누누이 기억하고 또 사모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 그리고 바다만큼 드넓은 호수. 겨울에는 꽁꽁 언 호수 위에 차길이 열리기도 하고, 과거엔 철로까지 놓아서 기차도 다녔단다. 호수 동쪽엔 알혼이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이 알혼섬은 동쪽나라 샤먼의 제일가는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의 아들 텡그리를 모신 신앙과 불한(불칸) 바위는 25개의 섬을 가진 바이칼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알혼섬에 간직되어 있다. 나는 알혼섬으로 일찌감치 발길을 옮기려고 일정을 서둘렀다. 이르쿠츠크에서 시내 구경을 좀 하고, 초기 조선공산당 멤버들이 거닐었다는 그 오래된거리에서 식도가 타들어가는 듯 독한 보드카를 구해 주정뱅이처럼 마셔댔다. 데카브리스트의 유물전시장인 발콘스키의 집과 국립미술관을 찾아가 혁명기 러시아 최고봉 화가 일리야 레핀의 명화도 감상. 저녁 식사는 흑빵과 훈제 오물로 배를 채웠다. 찬바람이 부는 앙가라 강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집시 여행자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통하면 모든 여정이 일사천리로 술술 풀린다. 여행자들은 여행자들을 알아보며 돌보고, 그리하여 여행은 오래된 영혼들을 무사히 종착지로 데려다 준다. 여행자의친구 또한 알고보면 여행자요, 아니 본래 우리는 모두 여행자 신분이 아니겠는가. 바이칼 외딴섬 알혼은 불안한 둥지를 맴도는 새처럼 자본주의의 겹겹한 포위망속에서 원시 그대로의 풍광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장네 견공인 ‘가브리’는 기특한 안내견이었다. 녀석을 따라갔더니 샤먼 무당의 성지 불한바위가 떠억 나왔다. 숨을 할딱대는 개의 꼬드김에 넘어가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첨벙! 호수물이 너무 차가워서 아랫니 윗니 으드드 엔진 맞물리듯 갈렸다. 바이칼 호수에 몸을 담그면 감기 따위로 고생하지는 않는다던데, 정말 그래서일까, 나는 이후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시방까지 건강하다. 바이칼 덕분으로알아야지.
한반도 남단 4대강의 물줄기 원류가 바로 바이칼이라면 억지춘향일까. 지구별 땅 아래 물길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는 법, 그러니 내가 헛소리 흰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정녕 아닐 터. 이 아름답고 청정한 본류의 물길과는 상관없이 악성 탁류를 만들어내고, 시멘트로 쳐발라 숨통을 자르고, 국민들을 놀라운 사기행각으로 속여가며 운하 비스무리 시멘트보를 높이쌓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4대강 찬성론자들은 바이칼 호수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아야 한다. 이쪽말로 댑대고깔(오히려) 앙가라 강에다 보를 높이 쌓고, 바이칼엔 관광 유람선을 띄우는 것은 물론, 호수를 가르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바이칼을 만나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쪽은 둘러보지 마시길... 뿐만인가. 섬이나 전망대를 향하여 온갖 경박스러운 빨주노초파남보 조명을 쏘아댈 자들이다.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는 것이 선진조국의 디자인이라 믿는 참으로 안타까운 분들.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 며칠 밤낮은 황홀경에 거진 뜬눈으로 보냈다.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불편하고 답답한 구석이 많겠지만 나는 내 일상의 연속선상이라서 만사가 행복하고 감사했다. 햇노란 야생 들꽃과 이야기 하고, 언덕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뛰노는 백마 흑마들을 구경하고, 호수가 말끔히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오물 스프를 달게 먹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불한바위에 가서 박수무당이나 되는 듯 기도삼매경. 내 기도는 제국과 자본에 맞선 목수 노동자 예수를 모신 기도이지만, 그래도 모든 기도는 바이칼호수처럼 하나로 뭉쳐지겠지. 우리네 4대강과 생명누리 통일누리를 갉아 먹는 쥐떼로부터 살려달라고 두 손 모았다. 또한 이 바이칼이 추방당한 예언자들을 위무하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세계인들에게 '찬물'이 되어 달라고 기도했다. 해무가 잔뜩 끼어있는 어느 아침, 번영과 성장의 욕망 따위 그저 강변에 피어나는 안개와 같으리니 이 환각이 걷히면 그때는 알아차릴 것인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억지스런 희망, 상투적인 전망을 늘어놓는 자들이 활개치는 오늘 우리 세대에, 자신을 잠잠 뒤돌아보는 급박한 자성... 지금은 우선 기도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달아 불한바위에서 오래도록 바이칼을 응시하며 비나리손 모았다. 그 어떤 무당보다도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전국녹색연합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0.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