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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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임의진의 그림여행] 리버풀로 가는 기차는 비틀스의 꿈을 싣고 달린다/ 광주일보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7-08-02 (수) 10:57 조회 :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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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로 가는 기차는 비틀스의 꿈을 싣고 달린다. 

1. 
시인 김수영은 여름을 소음이 번성하는 날이라고 명명했다. 딱히 시끄러울 일이 없는데도 소란스럽기까지 한 여름. 뭉텅이 사람들은 소음이 되어 떠돌고, 소음을 찾아 길 나선다.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소음도 번쩍인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여름밤은 이래서 더욱 좋다. 소음에 시달린 마당 한구석에 철 늦게 핀 여름 장미의 흰 구름 소나기가 지나고 바람이 불 듯 하더니 또 안 불고 소음은 더욱 번성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다 남은 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던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기 전 날 우리는 언제나 소음의 2층...” (김수영, 여름 밤) 빨간색 2층 버스가 넘실거리는 런던. 지난 7월 한 달 동안 런던의 소음을 만끽하며 지냈다. 거리마다 악사들이 넘치고 풍성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귀동냥으로 들은 초짜 밴드의 풋내 나는 비틀스 노래도 야릇했다. 처음에는 소음이었다가 나중에는 솔깃해지는... 노래를 부르던 소년과 피아노를 연주하던 소녀는 가시버시 짝꿍인가. 노래를 부르다가 다가서더니 혀끝의 입맞춤. “내 사랑이 커질지 물으시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대여 내 곁에 가까이 있어 주세요. 그럼 보일지 모르겠네요.” 비틀즈 멤버이며 크리슈나처럼 수염을 길게 기르고서 인도 갠지스 강을 거닐었던 순례자 조지 해리슨의 명곡 ‘Something’. 사랑은 가까이 있어주는 일. 내 곁에 가까이 있어 달라는 청. 멀리서는 소음이었던 것이 가까이에선 밀어가 되는 신비. 멀리서는 남이었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연인이 되는 신비. 문득 리버풀로 가는 기차표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세게 먹었다. 비틀스의 고향. 대서양 바다와 섬나라 영국이 만나는 항구 도시. 아프리카 노예를 가득 싣고 와 해변에 부려놓았다는 그곳은 지금 평화와 예술을 나누는 도시로 탈바꿈하여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가 된 여행지. 


2. 
런던 유스턴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그야말로 그린 필드, 초원을 가로질러 날쌔게 달린다. 두세 시간 후면 리버풀에 도착. 모기가 없고 선선한 여름은 은총의 땅이어라. 노동자들의 소금 땀이 전 바람도 싫지 않다. 지방마다 로컬 맥주가 되어 사람으로까지 흐르는 강물. 바람과 물은 또래 동무인 여행자다. 물은 하염없는 여행자, 수변의 꽃은 연인. 여행하는 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서지고 헤진 순례의 여정이 짐작되고도 남는구나. 음흉한 속내도 뼛조각도 없는, 스스로 날카로움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을 보노라면 여행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배우게 된다. 더러 강물 안팎으로 꽃이 피기도 하여 곳곳이 수상 정원. 양떼는 목을 축인 뒤 풀을 뜯고 목자는 카우보이 복장을 하며 서성거린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을 읽고 있던 건너편 창가의 청년은 책을 덮고 오랫동안 그런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는 머리맡 짐칸에 기타를 올려놓고 있었다. 가수 지망생일까 아니면 현역 가수일까. 알아보는 이 없는 걸로 보아 팬을 거느리고 다니는 가수는 아닌 듯 보인다. 필시 비틀스의 꿈을 싣고 기차에 올랐을 것이리라. 유명세보다는 그 정신으로 약진하길.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나아갈 때 미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북극성처럼 확실한 방향감각을 지녀서 여행하기를.   
영국 기차도 홍익매점처럼 아저씨가 오가며 커피와 빵을 판다. 은하철도 999에서 파는 물건들을 사갖고 싶은 아이들은 꿈을 꾸려는 목적으로 일찍 잠을 청하곤 그랬다.      
아이스께끼요 아이스께끼! 환청처럼 들리는 기차 안의 풍경. 칙칙폭폭 대신에 오브라디 오르라다 합창으로 구르는 국영철도 브리티시 레일웨이. 민영화와 싸워온 국영철도 노동조합의 격문이 버려지지 않도록 역전에 나부끼던 대자보를 꼭꼭 눌러 잡아주었다.   


3
이제는 리버풀 항구. 물에 뜬 것은 모두가 배. 내 수첩에 적힌 대만 시인 지셴의 시 <배>가 눈에 들어온다.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한다. 내 파이프 자옥이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남저음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 단위는 인생이라는 중량.”
바닷바람에 실린 염기가 훅하니 코끝으로 전달되었다. 뱃고동 저음의 노래는 렛 잇 비, 예스터데이, 또는 이매진. 인생의 중량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잊지 못할 팝송 으뜸 곡. 오르골이 툭툭 발길을 차며 울리듯 나도 터벅거리며 콧노래를 불렀지. 여기는 리버풀 항구. 겁 없는 아이들은 바다로 곤두박질 뛰어들고 겁쟁이 아이들은 광장의 분수대에서 물에 젖는다.   
자유를 갈망하던 사총사, 존과 폴 그리고 조지와 링고. 맨땅에 지도를 그리면서 헤쳐 온 세월. 역사를 바꾼 뮤지션들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장님이 사물을 손으로 읽듯 그들은 악기로 세상을 읽어내렸다. “당신은 혁명을 원한다 했죠.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이 바뀌길 원해요. 당신은 그걸 진보라 했나요. 하지만 당신이 파괴를 말한다면 나를 그 집단에 넣지 말아요. 하지만 잘 될 거예요. 걱정 말아요... 당신은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자 했죠. 하지만 당신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나 마오쩌뚱 사진을 들고 다닌다면 누군들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도 잘 될 거예요. 잘 될 겁니다.” (비틀스 노래, 혁명 Revolution)
리버풀에서 시작된 그 청년들은 하나의 혁명. 세계가 노래들로 하나가 되고 한마음의 분투를 이룬 혁명. 세계가 문화예술로 뒤집어진 장엄한 사실. 이것은 부르조아들의 단문화주의(Monoculturalism)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승리였다. 일본인 예술가 요코와 결혼한 존 레넌은 둘이서 민권운동과 저항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랬던 나라가 지금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쌀쌀맞은 인심을 조장하고 유럽 탈퇴라는 쇄국의 브렉시트를 발동하다니... 
그래 잘 될 거예요 잘 될 거지만, 보통 세상의 모든 선한 혁명이 죽 쑤어 개를 주고, 그냥 방이 다를 뿐인 인간들에게 갖다 바친 꼴이 되겠다는 김수영의 시가 떠오르는 건 또 무엇이란 말이냐. 악몽을 더는 꾸기 싫다. 이매진의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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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시인, 화가, 목사. 메이홀 & 이매진 관장. 
경향신문 칼럼니스트(2006- 현재). 
아울로스 미디어 월드뮤직 담당자
EBS 세계테마기행 중남미 전문 출연. 
개인전 21회, 독일, 일본, 동티모르 등 해외전시. 
저서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 참꽃 피는 마을>, <앵두 익는 마을> 등과
음반 <여행자의 노래>, <러시아 여행>, 
< 쿠바 여행>, <노르웨이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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