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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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매매 지지 차차/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11-11 (수) 16:38 조회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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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지지 차차




삼시세끼. 아침엔 감자와 햇차, 점심엔 고구마와 물김치. 저녁엔 뭘 먹을까. 감이 유혹하누나. 감나무에 까치들이 몰려와 실컷 먹고서 판소리 한 대목. 새들이 집을 찾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요즘은 앞마당 건너 동네 밭에 있는 감나무 때문이다. 더 빼앗기기 전에 나도 숟가락을 얹었지. 단감을 몇 개 땄는데 어떤 건 흐물흐물. 지난주만 해도 엄청 사각거렸는데. 이가 모두 빠진 늙은이가 되면 홍시나 먹게 될 거니까 젊어서 부지런히 단감을 깎아 먹어야지. 사각사각 입에서 나는 소리가 즐거워 눈을 감고 먹는다네. 

58년 개띠 케빈 컨이라는 피아노 치는 사내. 앞을 못 보는 장애인. 그가 까뭇한 세상에서 건져낸 한적하고 느린 곡 정원(Le Jardin)을 틀어놓고, 환기할 겸 창문을 다 열고, 늦가을 정원에 나가 앉아 있으니 새들도 숨을 죽이고서 귀를 기울인다. 누가 쇼팽 콩쿠르 1등을 먹었다지. 축하하지만 너무들 1등에 열광해 젊은 연주자까지 식상하게 되어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돼. 기계적인 달인의 연주보다 이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귀하고 선한 친구의 곡을 듣고 싶어. 인간은 말도 모자라서 악기를 연주하며 사랑과 슬픔을 나누고 교감하지. 

얼마 전 신문에서 판다곰의 말을 알아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매매(사랑해), 즈즈(배고파) , 구구(편안해) 어린 판다는 즈즈나 와와라는 말을 자주 한 대. 배가 고프거나 엄마가 무거운 체중으로 누르고 있을 땐 빼달라면서 즈즈, 와와. 기분이 업되면 개구진 목소리로 구구. 수컷 판다는 매매매 하면서 사랑을 구하고 암컷 판다는 수줍은 듯 지지 차차 소리를 낸대. 달콤한 사랑의 인사. 대밭이 지천인 담양에 살고 있으니 대나무 잎사귀를 먹고 사는 판다에 관심이 많다. 시선생께옵서 판다 한 쌍을 우리나라에 선물했다는데 대나무 오르간이 있는 담빛예술창고 정원에다 풀어놓고 진종일 같이 놀아주고 싶어라. 죽녹원 대잎을 먹고 매매 지지 차차, 같이 살고파. 이 세상에 가득한 수많은 말들과 소리들. 정죄와 흉보기, 갈등과 반목의 말이 아닌 사랑과 자비의 말들이 넘치기를. 매매 지지 차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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