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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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소쇄원 달밤/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8-15 (토) 10:08 조회 :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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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달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 걸까. 외딴 집을 볼때마다 그런 궁금한 생각이 든다. 산새와 고양이, 동네 개가 한번쯤 안부나 물어줄까. 인기척은 아예 없고 지붕에서 톡하니 흙덩어리가 떨어지는 집. 벽은 검댕이가 슬어 까맣고, 새들이 물어온 나뭇가지로 지붕은 덮이고, 밤마다 듬성듬성 별이 박히면 집도 기운이 다해 혼령이 빠져나가버리겠지.


지난 봄날 강물 위로 노을이 눈물짓던 강변마을, 금방 쓰러질듯 가련한 슬레이트 지붕을 보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거 같아 기웃거려 보았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폐병 걸린 퀭한 눈을 하고서 방문을 열었다. 깜짝 놀라 돌아섰지. 잠깐 엿본 방은 굴속처럼 캄캄했고 마당에 홀로 핀 하얀 앵두꽃은 가난의 정도와 시름을 짐작케 했다. 깊은 산골은 한집 건너 그런 집들이 늘고 있으나 대도시 주변은 대궐 별장이 날로 생겨나고 있어. 도대체 저 많은 집들을 누가 채울까.

 

여행에서 돌아와 집밥을 해먹고 친구들과 골짝물에 발 담그며 복숭아와 옥수수, 수박을 맛나게 먹었다. 건넛마을엔 소쇄원이 있는데 하루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와 가이드를 하기도 했다. 강진 살 때는 손님 오시면 다산초당을 하루에 두세 차례 가기도 했지. 외지 손님들 덕분에 휴가철엔 더욱 그랬다. 의미 깊은 곳이라 고달픔보다는 감사로 삼았던 발걸음...

 

담양생활은 소쇄원을 자주 가게 된다. 저 집에는 누가 살까. 대숲을 돌아 소쇄원이 보이자 누가 그랬다. "저게 소쇄원이야? 아무도 안 살아?" 과연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 선비는 여태 대청마루에서 시를 짓고 밤에는 달님이 불을 밝혀주고... 낙향선비 양산보가 시를 짓던 대청마루에 동네 할머니는 빨간 고추를 널기도 한다.


 한동안은 상사화가 어찌나 붉던지 대낮에 길을 잃은 뻔도 하였지. 옛사람은 죽었으나 선비의 정신이 여태 살아있다. 소쇄원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선비의 정신이 죽고 없다면 집도 같이 명을 다할 것이다. 조선 중기 아무리 잘 지은 대갓집이라도 모두 사라졌으나 이 유배자의 정원만 홀로 남아있구나. 과연 지금 짓는 저 수많은 주택들은 얼마나 오래갈까. 후세에 누가 있어 집을 찾아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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