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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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 편지] 라다크의 별과 전깃불/ 경향신문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5-06-24 (수) 13:11 조회 :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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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의 별과 전깃불



한번은 북인도 마날리를 거쳐 라다크에 찾아갔다. 한강 주변 캠퍼들은 상상도 못할 험난한 산악 오프로드. 지프차를 빌려 타고 히말라야 산길을 따라 몇날 며칠을 떠돌았지. 함께한 화가 형이 내게 그랬어. “동상. 별이 오지게 떴구마. 화폭에 오랜 날을 별을 그려왔더니만 원도 한도 없이 보라고 뜬 선물 보따리구만.” 신경림 시인의 시 <별을 찾아서>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다 돼버린 별들을 찾아서, 내 돌아가는 길에 동무 될 노래를 듣기 위해서, 히말라야 라다크로 별을 보러 간다.” 


평양 순안비행장만큼 조그맣고 순한 비행장을 놔두고 거친 산길을 따라 별을 보러 찾아간 길.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 밤에 미루나무 사이로 뜬 별구경은 황홀경. 목동자리 별에서 갑자기 별똥별이 툭. 사별했을 가난한 목동을 생각했다. 이승에 등을 돌리고 길을 나선 영혼은 얼마나 강인한가. 


낮엔 당신의 집에 주소만 가지고도 찾아갈 수 있지만 취한 밤에는 습관성 방문이 아니고서는 마을조차 발견할 수 없을 어둠의 땅. 오래된 미래 라다크는 정전이 잦고 가로등이 드물었으나 밤별들이 대낮처럼 밝아설랑 누구하나 길을 잃지 않았다. 전봇대가 나무보다 많다고 세상이 환해지는 건 아냐. 가로등이 저토록 많지만 별빛만큼 달빛만큼 환하지 않다. 


인간은 전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도 많아. 예를 들자면 침묵, 대화, 자연. 그리고 진정한 빛과 어두움, 풀벌레 우는 소리, 나무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장난꾸러기 바람, 부지런한 발걸음, 무엇보다 전기가 앗아가버린 가장 큰 건 바로 사랑이다. 전기는 사랑의 은밀함과  풋풋함을 폭로하고 감전사 시켜 버렸다. 게다가 악인들은 사상범을 만들어 전기 고문을 행하기도 하지. 전기를 얻기 위해 괴물딱지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감당할 수 없는 파국에 직면하고서도 이 문명은 반성조차 없다. 전깃불이 귀한 라다크에서 나는 무탈하게 잘 살다 왔어. 별을 그렇게 많이 보게 될 줄이야. 진짜 깜놀이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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