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자유로이 흘러가는 일
임의진 (시인, 칼럼니스트)
1. 집시, 보헤미안, 음악
북인도에서 비롯된 자유와 평화의 유랑족속 ‘집시’는 소유와 책임을 뒤로하고 오로지 삶의 근거지를 ‘길’에 두고 사는 무소유자유의 대명사렷다. ‘돈의 위력(위세)’이 절반은 차지하는 관광(유람)과는 딴판으로(노마드 보헤미안이라 비하되는, 메뚜기떼와 같은 침략과 수탈의 족속과 명확히 구별하고자 한다) ‘여행, 유랑, 방랑’은 이러한 집시의 광시적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말이다. 집시가 장거리를 이동 끝에 동유럽 보헤미아 지방에 들어가서는 보헤미안이라 불렸다. 그래서 집시의 다른 이름은 보헤미안이 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란 광시곡을 가리킴인데,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노래가 설풋 떠오를 것이다. 그의 노래는 화르르 불타는 동백꽃처럼 생의 속살까지 마구 불지르는 마력을 지녔다. 우리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남의 노래 같지 않다는 생각에 노랫말 말고 멜로디로도 쉽사리 동화되고 만다. 형식과 내용이 자유로운 환상곡풍의 랩소디는, 서사의 장르로 부유물처럼 떠돌며 실수하고 죄를 짓고 반성하면서 사랑으로 치유하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 “나는 가난한 남자. 내게는 아무것도 진실하지 않았어요. 엄마! 사람을 죽였어요... 엄마 인생을 올바로 살려고 했는데 이젠 끝난 거 같아요.”
집시마냥 인생을 여행과 꿈과 사랑으로 탕진한 필라델피아의 시인 휘트먼은 이렇게 노래한다. “뛰노는 말처럼 견고하고 상냥하고 당당하고 충격적인, 나와 이 신비는 여기 서 있다. 나는 그러나 만족한다. 나는 보고 춤추고 울고 웃으며 노래할 것임으로.”
집시들은 슬픔과 비애, 공포와 전율, 고독과 절규를 보통 음악으로 표현한다. 음악과 울음 사이를 곤혹스럽게 서성이는 그 무엇으로 생의 ‘길바닥’ 여정 가운데 위로와 동행을 삼아야 한다.
2. 무위의 흐름, 인생살이
낡고 경직된 대립과 불화의 이념이 여전하게 강고하다. 연민은 감정과잉 따위로 치부되어 맨가슴의 로맨티스트 하나 만나기가 귀해졌다. 증폭되는 기계 사회와 자본의 이해관계들 속에서 진화되어온 과학이나 경제는 시방 인간성 그 위에 높이 군림하며 호령하는 현실이다. 예수의 마구간 탄생설화는 과학자 미셀 오당의 얘기가 가장 재미있는 해석일 게다. 포유동물은 출산 시의 장면이 외부로 노출될까봐 무척 경계하는 동물인데, 마구간은 그런 의식화된 뇌 혹은 이성적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며, 심층적 원시의 뇌를 자극하는 공간이란다. 그런 곳에서 과도한 의학적 폭력이나 노출도 없이 아기 예수가 무사히 자연분만을 하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학설이다. 허무맹랑한가? 폭력적인 의료를 통한 출산, 진통제와 호르몬 류의 과다투여로 진행되는 제왕절개는 오래전부터 우리 시대의 대세가 된 출산방식이다. 병원과 학원에 포위된 세계, 폭력에 노출되어 태어난 아이들이 자유와 평화, 대자대비의 대자연을 노래하는 집시 종족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인위와 작위의 뒤틀린 세계에서 물처럼 낮게 흐르며 오롯하게 무위의 춤을 추는 자들, 생을 직시하고 광시적으로 살아내는 그런 참다운 영혼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렵고 드문 시대인가... 뿐만인가. 곤고함 가운데서도 빛나는 희생과 생을 다 바친 유머로 세상의 바닥을 짊어진 사람들, 그들의 무위적 흐름도 집시의 흐름과 많이 닮았다.
“내 친구들은 과연 누구일까. 환자들, 약자들, 영혼이 가난한 자들, 죽어서 갈 곳이 없는 자들, 노인들, 아이들, 미혼모들, -무작정 데모꾼인 학생들은 사절-, 겸손한 농부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나를 기억하도록 하는 강태공들, 자기 아버지를 전혀 모르는 자들, 나처럼 어머니를 잃은 자들, 친아들로부터 설움을 겪는 자들, 부인에게서 바가지를 긁히는 자들, 아라우카노 인디오들, 가끔 승진하지 못해 괴로운 자들,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르는 자들, 빵장수들, 묘지기들, 내 친구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처럼 희생으로 목숨을 바친 공상가, 이상주의자들” -시집 <아가씨와 죽음>중 ‘엘키 그리스도의 또다른 설교’에서/ 니카노르 파라(칠레 시인)-
3. 중간 기착지, 스와라지의 작당
노동문제, 재정문제, 인권문제, 식민지론, 환경문제 등 우리세계의 골칫거리들과 약자에 대한 잔혹함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미래)까지도 여전히 발목잡기를 할 것인가? 연민에 기초한 최소한의 양심적 계급 연민과 영혼이 자유로운 아나키적 미학으로 다듬어진 ‘자유인 보헤미안’ 이 과연 이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어 가는 자본세계를 허위허위 춤추며 건너갈 수 있을 것인가. 다수는 늘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경쟁력 없는 농업은 몰락 직전에 내몰리며, 고단한 생애와 불타는 대지를 위무하던 음악조차 산업화된 기획사와 미디어의 소비에 파탄나고 있는 아수라 속에서.
이러한 세계에 정면 저항하는 작당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인도에서의 스와라지(Swaraj)라는 움직임은 그중 하나이다. 스와라지란 ‘자치’라는 말로 번역된다. 스와라지에서는 탈식민화의 기치를 내세우며 자주, 자립, 자존 위에서 여행자, 순례자, 예언자, 지혜자들의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경청한다. 이 야수적 사회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대항할수 있는 첫 번째 모의란 자치의 주민운동이며 이를 거점 삼은 ‘스와라지 순례’로 생을 온온하게 보내고자 결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생을 거주보다는 이동으로, 정착보다는 유랑으로, 독점보다는 나눔과 비움과 버림으로 이해하며 다가서되 ‘잠시 머무는 정거장’을 또한 소중하게 가꾸어내는 것이다. 에고와 이기가 아닌 스와라지의 작당은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그리고 승냥이 들개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움직임이다.
4. 공감 능력
유랑과 연민은 ‘이상하도록 따듯한 공원’처럼 우리들의 생을 따듯한 두 팔로 껴안아 위로해 주는 힘을 지녔다. 성장과 개발과 물신숭배에 사로잡힌 강퍅한 세계에서 이 어둠의 실체를 대면하고 거대한 광기에 반역할 수 있는 힘은 모름지기 유랑과 연민의 자기화뿐이다. 유랑이 없이는 변방 변두리 외곽 틈새 ‘숨통’을 만날 수도 없고, 수탈이나 지배가 아닌 거룩한 연민과 존중으로 이웃(상대)과 상생할 수도 없으며, 나그네로 잠시 따듯하게 깃들어 사는 방법조차 터득하지 못하게 된다.
집은 생명이 깃드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재산적 가치로 바라보는 세태는 가엾고 안타깝다. 집이 없는(있어도 없는) 보헤미안은 우주공간 모든 허공을 지붕 삼아 살아가며, 어떤 조건에서도 생명을 우선하고 다음 여행(여행지)으로 그저 가슴 부풀고 설렐 따름이다. 염려와 불안은 여행의 순간에 잠시 느끼는 묘미일 뿐. 모든 생을 정착지에서 염려와 불안으로 보내는 어리석은 누구들과 비교될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공감하는 사이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인연이란 곧 공감대라고 생각한다. 고통과 난관, 불행과 부족, 아쉬움과 경쟁의 치열함에서 흘리는 눈물의 세계가 아니라, ‘대형마트의 카트를 밀며’ 아등바등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렁저렁 삶의 여백과 여유를 남겨두고 비발디의 사계를 풋소녀처럼 감상하며, 보헤미안 랩소디를 가슴으로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죄인들은 오늘 길 위에 펼쳐진 그대들의 그림자이고, 우리는 공감대의 인연으로 이 자리에 그림자들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잠시 너의 죽음과 죄를 나의 것으로 치환하는 타자지향적인 마음을 지녀보고 동시에 개인주의의 무한분할로 만끽하는 자유와 행복도 놓고 가서는 안 되는 마차(馬車)의 그림자이니만큼 설핏 뒤돌아본다. 다만 그것들만을 챙겨 여행할 따름이다.
5. 히피처럼 여행하는 법
히피란 ‘히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세상에 궁둥이를 까는 짓, 뒤돌아서서 자기답게 사는 삶을 가리킴이다. 집시, 보헤미안은 히피와 일맥상통한다. 비열한 거리에서 봄날의 살구꽃을 만나는 행운처럼 경쾌하게 유랑하다가 우리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노래하는 히피여야 한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들려오는 노랫소리. 고요하게 서성이는 생명들과 안개구름. 저만치서 흰 구름은 서편으로 흘러가네. 우우 사랑해요. 우우 노래해요. 떨리는 손 나뭇잎은 이슬비와 춤을 추네. 강물소리 빛나는 땅, 하늘하늘 새들 나네. 노래하라, 그림자여! 비탈길의 목숨이여. 우우 사랑해요. 우우 노래해요. 걸음걸음 부신햇살 갈가마귀 눈을 뜨네. 자작나무 은빛숲에 땅거미가 내려오면 은빛물결 주인이여, 무심결에 만난 이여. 우우 사랑해요 우우 노래해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히피처럼 사랑하고 노래하며 나는 유랑과 연민으로 모든 주어진 시간을 탕진하고 싶다. 마크맥 부족 인디언 언어에는 시간이란 말이 없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끝나는 거지. 그것이 시간이지”라고 말한다. “내 마음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 “나는 오늘 어둠속에 있다”라는 표현들은 자연에 합일된 사람의 마음자리를 보여준다. 알곤킨 인디언 부족은 노인을 ‘단풍이 들 때’라고 표현한다. “겨울눈을 몇 번이나 밟아보셨나요?”라고 물어야만 노인의 나이를 알 수가 있다. 그만큼 계절의 순환을 존중하고, 나이를 더 잡수며 여행한 이들을 공경하는 자세가 언어속에 깃들어 있다. 나 또한 아주 오래 전에, 순우리말로 달 이름을 짓고 달력을 처음 만들면서(1월 해오름달, 2월 시샘달, 3월 물오름달, 4월 잎새달, 5월 푸른달, 6월 누리달, 7월 견우직녀달, 8월 타오름달, 9월 열매달, 10월 하늘연달, 11월 미틈달, 12월 매듭달) 히피처럼 세상을 여행하되 될 수 있으면 자연과 합일하며 양심의 소리에 반응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에 가슴 뛰고 싶었다. 내 인생, 아니 우리 인생의 매듭달까지 그런 소중한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족하지 않겠는가. 비현실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라는 말로 엿바꾸어 생각하면 그만인 말일 뿐.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