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의 행보, 여행자가 빚어낸 월드 포크 ‘멜랑콜리맨’
-서정민갑(대중음악 의견가)
임의진, 그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목사이며 시인이라 알려졌지만 그는 사실 화가이고 여행자이며 음반 기획자이자 글쟁이 작가다. 종횡무진 자신의 마음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며 하고 싶은 것은 죄다 해보는 사람, 자연과 예술 안에서 뒹굴며 탱자탱자 노니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몽창몽창 벌여둔 일도 모자랐는지 2006년부터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노래는 우리의 일반적 감각으로는 목청이 좋은 노래꾼이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 여리고 새된 목소리의 그동안 음반은 우리가 가창력 있는 가수에게 기대하는 마력을 보유하지 못한 방외인의 습작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시창(詩唱)을 들으면 누구든 맘껏 노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족한 노래를 계속 불러왔고, 이제 무려 4장의 솔로 앨범을 가진 중견 뮤지션으로 찾아왔다.
그가 올해 내놓은 네 번째 앨범 [멜랑콜리 맨]은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제목으로 변하지 않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음반에 담긴 노래의 힘은 그가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꾸준히 좋은 음악을 들어오고, 좋은 음악인들과 함께 해 온 시간은 그의 노래를 임의진 개인의 노래가 아니라 여러 음악인들이 함께 빚어내는 음악으로 숙성시켰다. 김두수와 윤병주라는 탁월한 두 기타리스트가 이끌고 곽우영, 최재경 등이 거들어 만들어낸 음악은 그의 목소리가 지닌 연약함마저 매력적으로 감싸 안았다. 노래로서 좋은 음악이기에 앞서 전체적 사운드가 튼실한 음악이 된 것이다. 음악이 깊어진 것이다. 이것은 오래도록 감성을 벼려온 그의 삶의 충실한 결과이기도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음악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월드 포크 뮤직으로 무르익었다. 이 음악들에는 그가 떠돌았던 세계 곳곳의 바람이 묻어 있고, 막다른 골목길이 있고, 그 곳에서 흘렸을 한숨과 기도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지구별 여행자의 시선으로 고백하는 이야기 속에는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 땅을 유랑하는 이의 눈에서 심장으로 새겨진 모든 것들이 총총하다. 세계와 우주를 품고 떠도는 이의 길동무 같은 다른 나라의 악기들도 경계 없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충실하게 수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국적인 질감을 음악적으로 복원하는데 몰두하지 않고 소박하고 자유롭게 읊조림으로써 어떤 월드뮤직에서도 맛보지 못한 자연스러움을 선사한다. 이 자연스러움은 스튜디오의 내밀함보다는 길에서 흥얼거리는듯한 노래의 편안함에서 비롯한다. 버스킹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그냥 노래로 쓴 여행 일기라고 부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수십억광년의 고독>에 감도는 서늘한 울림 앞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어느 작은 사원에서 따뜻한 손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듯한 치유와 위안이 아름다운 곡이다.
결국 임의진은 한국 포크의 영토에서 한 발 비켜 선 자리에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한국적이지만은 않은 그의 음악은 오랜 여행과 음악 듣기로 축적된 세계인의 것이며, 여행자의 것이다. 떠돌 수 있고 다른 땅의 호흡을 내면화할 수 있는 시대에 비로소 국경 없는 세계인의 음악이 임의진에게서 흘러나왔다. 네루다의 말처럼 시가 그에게 온 것이고, 음악이 그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멈추지 말기를. 나그네는 모든 길이 고향이지 않은가.
(아울로스 미디어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