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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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강연 <다종예술가의 시대를 열고자 함> 강연문/ 성공회대학교 2010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1-01-21 (금) 14:33 조회 : 3,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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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예술가의 시대를 열고자 함
 
 
임의진(다종예술가)
 
 
우리는 광활한 우주 속에 깨알 같은 별들 중에서 ‘지구별 파티’에 초대되었다. 그런데 다들 파티는
신나게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어깨춤은 반가운 님들과 같이 어깨 걸고 춤추면서
들썩들썩 신나게 어울리다 고향별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는 떠돌이별이다.
지내보니 좀 힘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사람’ 되려고 태어난 인생, 사람됨을
꿈꾸며 한바탕 재미나게 놀다 가는 게 내 꿈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관심사는 오직 ‘사람’이다. 꼬맹이 적에는 목사님인 아버지 서재에 꽂힌
책들을 야금야금 읽다가, 버지니아 울프 같은 여류작가에 관심이 꽂혀 장래희망 난에 ‘여류작가’라고
적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선생님의 꿀밤뿐이었다. “임마, 네가 여자야?”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연히《 전태일 평전》의 복사본을 구해 읽었는데, 기독청년이던
전태일에게 완전 꽂혀서 그와 같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사람’이라고 썼건만 학생과 선생님한테 끌려가서 서른대에 세 대 더 얹은
구타 세례를 받았다. 그 이후 나는 학교를 떠나 혼자서 여행을 나섰는데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감격스럽게.
내가 목사가 된 것도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나는 예수의 친구가 되었으면 되었지
십자군의 장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10년 만에 즐겁던 목회 생활을 접고,
진짜 예수의 친구가 되고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된다는 것은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일지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건 사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무언가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가는 거 같다.
(오만하게도^^) 삶의 요점이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잡(Job)때문에 걱정인가? 그럴 필요 없다.
걱정이란 놈은 두려움이란 놈과 함께 싸잡아서 아예 묻어버려라.
잡놈Job Man이 되려거든 선한 ‘잡놈’이 되어라. 잡다한 호기심을 가진 똘똘한 사람이 되어라.
그때부터 인연의 울타리가 넓어지고 겸사겸사 일자리도 생겨나고 그리 풀리게 되어 있다.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은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사람이다. 손은 돈을 세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을 토닥여주라고 있는 것이다.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면서 뒷사람이 비밀번호라도 알아챌까봐
몸을 웅크리고 돈을 세는 손, 과연 행복한 손일까?
진짜 행복한 손은 친구의 힘겨운 등을 토닥여주는 격려와 위로의 손이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그림을 그렸을 때 화가 친구들이 그랬다. “어깨춤! 그림이 갈수록 좋아지네.”
그러니까 나는 겁 없이 또 그림을 그렸다. 의형제 중에 가수 김두수 씨가 있는데, 그 형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깨춤처럼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으니 어깨춤은 가수를 해야 돼.”
그래서 나는 가수가 되었다. 나처럼 노래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으니까.
 
친구들이 이렇게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칭찬해주니 내가 무엇인가 되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만나기만 하면 매번 충고만 늘어놓고 비난하고 비하하는 사람,
늘 구박하는 사람, 몰래 흉이나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다지 인연하면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게다. 물론 충고가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늘 불편한 사람보다는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만나고 싶어한다.
내 외롭고 추운 등을 두드려주어 나를 무언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그렇게 그리운 사람이 되자.
누군가에게 그리운 동무가 되어 그가 무언가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글재주로 먹고 살다 보니 가장 자주 펼쳐보는 것이 한글사전이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자사전을 펼쳐 부수를 대조하다가 두통에 시달렸을 테고, 아직 일본의 식민지라면
일본어사전을 보고 앉았을 것이다. 요즘 추세라면 영어사전을 가까이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지만, 역시 한글사전 앞에 서면 뿌듯한 자신감과 명쾌 상쾌 시원함, 넘치는 다정함까지…….
모국어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 생각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어깨춤’은 우리말로 내가 지은 나의 이름이다. 어깨춤 추고 살고 싶은 바람으로 지은 이름이다.
대개 직업 종목이나 권위적인 ‘님’ 자 호칭 말고 인디언처럼 의미를 담은 예쁜 우리말 이름이 좋았다.
교회 있을 때 주일학교 꼬마들도 내게 거리낌 없이 어깨춤이라고 불렀다.
“어깨춤, 이것 좀 도와주세요.”
 
님자로 깎듯이 높이는 경칭이 붙으면 ‘이게 나야’ 하며 우쭐거릴 수도 있는데 그럴 일이 없어서 좋다.
친구들은 ‘어깨춤’ , 또는 방황하는 영혼이라며 ‘떠돌이 별’이라고 부른다. 남녘교회 목사로 10년을
지내다 그만두고, 산골로 들어가 전업 작가로 살고, 또 해마다 두어 달은 방랑하듯 먼 나라로 떠나
‘국제 노숙자’로 살다 보니 붙은 이름이다.
이름은 그렇다 치고 이름 옆에 붙는 사회적 호칭은 한결 다양하다. 지금은 직무를 내려놓았지만,
10년 동안 가난한 민중교회에서 목사로 일한 나는 진보성향의 개신교 목사로 분류된다.
목회 생활을 정리한 뒤에는 담양 병풍산 골짝에 한옥 작업실을 짓고, 이른바 전업 작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시와 수필, 동화를 짓고, 화가로 그림을 그리고, 람사르 총회를 비롯하여 집회 장소에
찾아가 포크 싱어가 되어 공연도 가진다. 월드뮤직 음반의 선곡자이면서 수입음반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채로운 예술작업을 하고 있자니 다종예술가, 멀티 플레이어, 토털 아티스트라고들 부른다.
수염도 기르니 ‘코털 아티스트’라고 놀리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무 자르듯 구분 짓는 직업으로 볼 때 나는 화가이고 작가이고 수필가이고 시인이고 목사이고
음반기획자이고 가수일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본다.
“목사님이라고 부를까요?”
“작가님이라고 부를까요?”
“선생님이라고 할까요?”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고 해도 교회 다니는 사람은 목사님이라고 안하면 벌 받을까 무서워(웃음)
꼭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사람 임의진이고 싶다. 자유로운 사람, 자유인, 자유혼이고 싶다.
그것이 내가 다종예술가로서 나아가는 궁극의 목표치다.
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잡놈들에 의해 시작됐다. 잡job과 노는 놈들, 즉 일하면서 놀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는 사람이 역사상 늘 존재해왔고,
그들이 새로운 개벽 문화를 주도해나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부분 시서가무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가까운 과거만 봐도 그렇다.
전라도에 사는 웬만한 어르신들은 임방울 명창처럼 창 한 자락 정도는 멋지게 하셨다.
그뿐인가. 집집마다 남농(南農)의 수려한 서화를 걸어놓고 감상할 줄 알았다.
 
서양으로 건너가면 다종예술을 하는 유명인들은 더욱 흔하다. 소설《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는 수많은 직업들을 섭렵한 끝에 지금의 유명작가가 되었다.
10대 시절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부모님과 자주 충돌하고 정신병원까지 갔던 그가 1970년대에는
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대통령을 풍자해 감옥도 가고 고문도 당했다. 한동안은 히피가 되어
떠돌다가 록 밴드를 결성하더니 음반회사 중역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글이나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지금의 유명한 소설가가 된 것이다.
비틀즈의 존 레넌도 알다시피 시인이자 화가였다. 자기 아들인 션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준 게
동화책으로 나올 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 한번은 호텔에서 종업원 아이에게 그림 하나를
대충 그려서 줬는데, 아이 엄마가 그걸 확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한 기자가 우연히 휴지통에
버려진 그림을 주웠는데, 지금 그 그림은 억대가 넘어간다.
존 레넌이 새삼 그립다. 그와 나를 짬뽕해서 가끔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독일의 문호인 헤르만 헤세도 어릴 적 직업은 시계공이었다. 서점 종업원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려다가 그만두고, 또 선교사도 되려 하다가 결국은 정원사로 지냈다.
말년에 그는 화가가 되기도 했는데, 그의 수채화는 정말 대단해서
꼭 한번 감상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하나도 하기 힘든데 왜 그렇게 이것저것 많이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
데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되물으련다.
“왜 이것저것 할 수 없는가?”
“왜 한 가지만 고집하는가?”
한 가지만 하는 사람들의 그 집요함이 나는 무섭다. 사람들은 집요함 때문에
다른 세계를 향한 관심과 도전에 눈을 감는다. 융통성을 잃고 전방위적 사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몰상식해진다. 그러다 반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이 될 경향이 아주 높다.
한 가지만 열심히 파다 보면 자기들끼리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고, 벽을 높이 치고 남들은
못 넘어오게 하다가 스스로 고립된다.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전문가라며 추켜세운다.
예를 들어 요즘은 우리 영화도 다양한 장르의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는데,
볼 때마다 영화는 좋은데 배경음악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개인적으로 괜찮다 싶은
영화는 대부분 외국 음악을 빌려쓴 경우가 많다. 영화 수준이 올라가면 영화음악과 무대미술도
조금씩 따라 올라가야 하는 법. 그런데 영화감독이 음악을 잘 모르고 미술을 잘 모르면 어떻게 될까?
이쪽도 저쪽도 다 알아가면서 함께 성장해야 제대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직업군으로 나뉘는 경계들에 대한 의미를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세상에는 멀티 플레이어들이 쌔고 쌨다.

교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다. 텅 비어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계속 채워주실 수가 있다. 하지만 안다는 생각이 목까지 차버리면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
텅 비어 있는 것이 진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끊임없이 열려 있는 사고와 새로운 것에 대해 긍정하고
받아들이려는 관심, 이것이 진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자기 세계에만 빠져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고집하다간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내적 감옥에서 그대는 살아나오라!
 
동물의 세계에도 그 단조로운 편협과 집요함에 빠진 녀석이 있다. 시속 80~130킬로미터로 달린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녀석이 바로 치타다.
치타는 보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안쓰럽게도 자기 몸무게를 계속 줄여가며 진화해왔다.
그래서 사냥을 나서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 먹잇감을 잡는 천부적인 사냥꾼이지만,
사냥이 끝나면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체력이 바닥난다.
이때를 노려 게으른 사자나 하이에나가 나타나 치타가 잡아놓은 먹잇감을
빼앗아가거나 독수리들이 떼로 몰려들어 훔쳐가는 일이 허다하다.
이뿐인가. 하이에나들은 치타가 사냥에 나서기만을 기다렸다가 치타가 잠깐 놓고 간 애지중지 귀한
새끼를 잡아먹어버리기도 한다. 자기 종목 하나에만 깊이 빠져버린 사람들도 속도를 내는 데만
열을 올려온 치타처럼 ‘자기 늪’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저것 잘하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다. 앞으로는 오히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를 대비해 인문학을 중심으로 넓게 파는 것이 중요하다.
나처럼 다영역적인 사람들을 학문적인 용어로 ‘통섭'이라고 표현한다.
일종의 경계가 없는 통합적인 상태를 말한다. 이제는 학문도 통섭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경향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분야를 파고들지 못하면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로간에 연관성을 가지면서 다영역적인 예술을 해나가면 끊임없이
충격을 느껴야 가슴이 뛰고 전율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땅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곳에서 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 모든 분야는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작가가 종교도 알고 음악도 알고 미술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깊고도 깊은 곳에서 예술작품을 꽃피워야만 영적인 힘을 갖는다.
그때 우리 문화도 차원을 바꿀 것이다. 20대라면 인문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독서와 공부를 하고,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를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다양한
세상을 만나는 것, 삶에서 정말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로또로 돈벼락을 맞거나,
알 굵은 반지를 선물 받거나, 해외의 유명관광지를 찾아가야만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바닥이 메말라버린 우물처럼 가슴이 메말라 두근대지를 못한다.
맥주 한 잔에도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진한 감동이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카이지 : 인생역전 게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갑자기 많은 빚을 지게 된 주인공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카드 게임을 하는데 번번이 지기만 한다. 결국 지하의 갱도에 끌려가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10년 뒤 그동안 일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데,
그와 동료 노동자들은 그 돈을 털어 술을 사 마신다. 10년 만에 마시는 맥주.
주인공이 맥주를 마시면서 전율하는 장면은 여태껏 보아온 그 어떤 맥주 광고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맥주를 간절히 생각나게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당연히 맥주를 마셨고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맛을 느꼈다. 10년의 고통과 뒤바꿀 만한 감동이 흔하디흔한 맥주 한 잔에도 있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예쁜 꽃들이 있다. 길 가장자리 잘 정돈된 화단에도 있고,
돌틈 사이를 안타깝게 비집고 나온 이름 모를 들꽃도 있고, 시골이라면 어느 들,
어느 산을 가나 정겹게 생명을 기댄 꽃들과 나무들이 언제나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이쯤에서 시 한수...
 
<봄산>
가지 위로 간신히 올라온 꽃들 나무 빨대를 꽂아
도랑물을 마신다 말갛게 쓸린 빗방울로
청소를 마치면 다시금 봄빛이 켜켜 쌓일 테지
지난겨울 나무청에 참나무를 쟁이러 뒷산에
올랐을 때 쓰러진 토막들 내 팔을 베고 영면했는데
봄에 와보니 소생한 뿌리들 긴 꼬랑지의 목숨이여
푸르동동 불씨 살려내 오연히 솟아났는가, 이 싹
살아 있음이라니, 아- 이토록 끈질긴 연緣이라니
(2007년 作)
 
사람들은 보통 꽃들을 그저 무심히 지나치지만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는
고맙게도 볼 수 있다. 차로 다니면 보이지 않는 것이 그보다 느린 자전거로 다니면
잘도 보인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잠깐 그 자리에 멈춘다.
꽃의 아름다움에 한껏 전율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멋내기에 한창인 아가씨들이 길을 걷다가 옷가게 쇼윈도에 걸려 있는 예쁜 옷을 보고
걸음을 멈추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예쁜 옷에 자꾸 시선을 주다 보면 패셔너블하게 발전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패션디자이너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아무런 관심 없이 일상의 아름다움들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쉽게 감동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는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자꾸 눈길을 주어야
눈이 뜨이는 것처럼, 아름다움에 박수 치고 멋있는 영화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사람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너무 좋은 노래는 듣고 싶고 나누고 싶고, 너무 감동적인 영화는 같이 보고 싶고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같은 영화를 두번 세 번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감동이 없어서 그렇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면 뭐하겠는가.
보는 이의 마음이 살아 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나도 예전에 여러 가수들의 좋은 노래만을 고르고 골라 테이프에 녹음해
여자친구한테 선물하곤 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너무도 감동스런 나머지 그 곡을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깊어져 어느덧 지금은 음반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삐딱이인 나에게 선생님께서 과한 체벌을 가했다. 더 이상 학교 교육은 필요 없단
생각에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난 나는 그 여행길에서 중요한 삶의 전환점과 만났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매일 책만 보고 고통 속에 지내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뜬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황홀하다니!’
‘내 삶이 이렇게 황홀하다니!’
나무는 하늘을 향해 무수한 가지를 뻗어 찬미를 하고, 꽃들은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세상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여행하며 바라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하늘에 별이 그토록 많은 줄
그때서야 알았다. 이렇게나 많은 별들 중에 나는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 불과했다.
‘나는 지극히 작은 자다.’
이 깨달음으로 나는 스스로 환경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를 흔들어 놓은 대표적인 사건은 우리 형이었다.
형은 상태가 심한 다운증후군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줄 알고 처음엔 그냥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는데,
용케도 죽지 않고 살아나 나와 둘이서 다사다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는 어릴 적 교회 사람들이 참 미웠다. 아버지가 교회를 옮길 때마다 교인들은
그 교회에서 발길을 돌렸다. 동네 사람들도 이상했다. “목사님네 아이가 병신이다”,
“목사님이 병신을 낳았다”고 수군거렸다. 사춘기인 나는 사람들이 ‘병신’이라 부르는
장애인 형이 부끄럽고 미웠다. 그래서 형과는 말도 잘 안 하면서 지냈다. 
결국 형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떠난여행에서 매일 밤 수많은 별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우리 형이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형은 다운증후군이라 원활하게 말을 못했다.
‘형이 하고 싶은 말은 뭐였을까?’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하늘에 별이 된 우리 형!’
‘나는 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고, 우리는 죽으면 모두 별이 된다.’.......
시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나무와 꽃들로부터, 수많은 별들로부터
그렇게 살아갈 용기와 위로, 힘을 얻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따뜻한 밥이 그리웠다. 중단되었던 고교시절도 다시 이어져 5년 만에 겨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형에게서 연민을 배웠고, 마음속 깊이 용서를 알게
되었으며, 생의 남다른 의욕과 희망을 선물 받았다.

길에서 만난 꽃에, 여행에서 만난 별들에, 순수하게 감동할 줄 알아야 사람은 깊어질 수 있다.
깊어져야 무언가도 되고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매일 걷는 익숙한 길 위에도
수많은 감동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걸 너무 쉽게 스쳐지나 간다.
겨우내 추운 대지 안에서 투쟁하듯 인내하다 기어코 땅 위로 솟아오른 작은 생명이 있고,
일 년 내내 견디고 준비해 마침내 절정으로 만개한 꽃이 있다.
여유로운 자만이 그 아름다움에 진정 취할 수 있다.
 
얼마 전, 바다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선물이 날아왔다.
‘아이패드’
아이폰도 일찌감치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떠듬거리더니 이젠 손에 익숙하고
달달하기까지 하다. 전화의 병폐를 씻는 ‘연락 두절의 즐거움’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저녁시간엔 주로 꺼두고 메일이나 우편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통신 방식은 세 가지다. 아이패드, 아이폰, 그리고 연락 두절.
과거에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아는 사람들을 ‘안달이 박사’라고 했다. 그에 비해
요즘은 각종 검색으로 뭐든 빠르고 손쉽게 알 수 있으니 누구나 안달이 박사가 되고도 남는 시대다.
나도 스마트폰을 써보니 궁금한 것은 언제든 검색해서 알 수 있으니 참 편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 시대가 되었다.
아는 것보다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전에는 정치를 정치인만 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국민들이 정치를 하는 시대,
나아가서는 모두가 정책을 입안하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정치와 직접 관계 맺고, 정치를 하는 직접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운전만 해도 그렇다.
평생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창피해서라도 한 달 안에
떼내려 한다. 처음엔 두려워서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하다 보면 다 된다.
모험은 두려운 게 아니라 흥미진진한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우리를 절대 패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가깝고 조금 안다 싶었던 세계가 언제든 뒤통수를 칠 확률이 높다.
 
호기심을 만땅으로 충전하고 그 호기심 따라 관심사를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고 관심사를 넓혀서 다양한 분야,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능력을
키워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게 되는 건데,
포기한 채 그 능력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대! 방황하고 있다면 너는 이미 아름답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두려워하지 않고 방황하는’ 데 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되는 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좋은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방황하며 강구하는 여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쿠바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말이 있다.
‘No Tengas Miedo'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스페인의 식민지배와 미국의 간섭 등 힘겨운 역사를
이겨내며 살아온 쿠바 사람들. 지금도 초강대국인 미국이 바로 옆에 버티고 있지만
우리가 절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며 서로 를 격려해주기 위해 이 말을 주고받는다.
특히 쿠바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 말을 굉장히 자주 해준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했던 말씀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예수님은 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야기했는데,
‘오병이어’는 소주 다섯 병과 안주로 멸치 두 마리를 말한다(웃음)
소주 다섯 병을 달랑 멸치 두 마리에 마셔야 한데도 절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안주가 없더라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소주 다섯 병을 깔 수 있는,
그런 ‘미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 방황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과거로 다시 돌아가보자. 아버지가 선교사였던 까닭에
신학교를 다녔던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부쳤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부모는 아들의 편지가 아닌 신학교로부터 급하게 날아온 전갈을 받아야 했다.
‘오후 2시, 헤르만 헤세 실종되다. 집으로 연락 오면 학교로 연락 바람.’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자신의 길을 놓고 고민하던 헤르만 헤세의 방황이
그날로 시작된 것이다. 그날의 방황이 없었다면 그는 작가가 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길이 아니면 돌아서 가는 것이 순리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될 것을 굳이 그 길로 꾸역꾸역 걸어갈 필요는 없다.
 
돌아가기엔 늦었다 싶어도 늦은 게 아니다. 새로운 길 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굴러먹든지 간에 절대 굶어죽는 법은 없으니까.
지리산을 가든 병풍산을 가든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산사람은 굶어 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거다.
혹 나중에 백수가 된다 해도,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백수들이
가장 바빠서 만나기도 힘들다. 나보다 훨씬 바쁘게 사는데 굶어죽을 리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만 된다면 무슨 문제든 술술 풀리기 마련이다.

두려움은 깨달음의 가장 큰 적이다. 두려움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바로 망상에서 나온다.
가령 어떤 이가 꽃을 뱀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하자. 눈을 감고 있다면 그는 영원히 꽃이 꽃임을
알 수가 없을 것이고, 눈을 떴을 때 비로소 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죽어도 알 수 없고 두려움만 커진다.
한국의 종교인들 중에는 열성신자보다 겁쟁이들이 훨씬 많다. 교회만 보더라도
헌금 안 내면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는 둥 하면서 두려움 때문에 주일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어디 종교뿐인가. 국가도 전쟁의 공포, 종말의 공포, 가난의 공포 등 정치적 도구로써 공포를
조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광화문에 있는 성공회 성당을 좋아하는데, 그곳에 가면 야외에 예수님 고상 십자가가 있다.
6 ·10항쟁 기념비에 앉아서 그 상을 바라보면 비둘기들이 날아와 예수님 얼굴에 똥을 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디 예수님 얼굴에 똥을 싸느냐고? 예수님 얼굴에 똥도 쌀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움이 새의 신앙이다. 새는 그래서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
그 무엇 때문에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두려움을 버리고 나면 삶에서
펼치고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어진다. 혹 ‘방황’이라고 하면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상 쓰고 찌푸린 얼굴을 떠올리는가? 방황에 대한 고정관념이고 진짜 방황을 몰라서 그렇다.
진정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은 인상을 쓰는 게 아니라 허허롭게 웃는 얼굴을 한다.
아무 두려움 없이 자유로운데 얼굴 찌푸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삶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다.
학생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마르크시즘에 깊이 빠져 운동에 깊이 관여했지만,
사실 그쪽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 속에서는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그러나’ ‘하지만’이었다. 동지가 어떤 얘기를 해도,
선배와 스승이 무슨 고언을 해도 ‘그러나’ ‘하지만’ 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그러나’ ‘하지만’은 건강한 비판과는 다른 자세다.
가슴을 열지 않고 긍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오는 거부와 거절, 두려움은 큰 아픔이었다.
공감, 이해, 용서가 아니라 고집불통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툭하면 고개를 좌우로
사래질 치는 모습과는 다른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감동하고 감탄하며 공경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맑은 이유는 하늘을 우러러 공경하기 때문이다.
키가 작다 해도 절대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할 일이 아니다. 키가 작으면 사람 얼굴만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하늘도 같이 우러러보게 되니 아이들처럼 맑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침묵하거나 생각을 머금을 수 있고 사색할 수 있는 정적인 여유가 있어 좋다.
이처럼 고개를 위와 아래로 움직이면 끄덕이고 수긍하는 것이 된다.
반면 고개를 옆으로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을 보라. 앞날이 막막한 사람이다.
부정과 비관의 자세다. 심판자의 역할에 만족하면서 비아냥과 계산적인 말을 입에 달고 다는 사람,
투덜이들이다. 건강한 비판 정신과는 다른 자세, 그것은 한없이 고개를 좌우로 사래질 치고
겁먹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다종예술가라고 나를 소개하면 간혹 전공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소리냐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결코 여러 문화예술 주변을 서성이며 기웃거리거나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자가 아니다. 부정과 두려움을 넘어, 이도저도 아닌 기웃거림을 넘어, 긍정으로 도전하고
어느짬 성취도 느끼며 행복해한다.
나에게 예술작업은 투쟁이며 땀방울 서리는 노동이다. 나는 과정 중에 있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고,
나처럼 사는 자는 나 밖에 세상에 없을 것이기에 자기 긍정의 주문을 자주 왼다.
‘이거 하면 다친다’고 생각하면 다치는 것이고, ‘처리할 수 있다’ 생각하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되고 안 되고는 내 마음이 긍정이냐 부정이냐, 도전이냐 포기냐에 따라 갈릴 뿐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
다종예술의 길이란 정말 별것 아닌, 그저 신나게 간섭하고 통섭하며 사는 길이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면서 다양한 삶들을 나눌 수 있는 길이다. 핵심은 진정 할줄 알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더 넓은 분야,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구별에서의
파티를 신나게 즐기는 것이다. 그림, 음악, 공연 등등 문화예술 전반으로 관심을 넓혀가면서
조금씩 더 알아간다면 누구나 다종예술가가 될 수 있다.
다영역적인 예술을 해나가는 새로운 시대의 사람, 새로운 인류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나도 좀 외롭지 않게 다종예술가 친구들과 오며가며 사랑하고픈 바람이다.
 ‘머리복잡 다사다난’이라도 그게 행복이겠다.
 
 
 
 
(2010, 성공회대학교 강연/ 채록: P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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