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슬로 시티에서 듣는 느리고 고운노래
첫 번째 <담양여행>을 준비하던 때, EBS 아틀라스 개시 방송
<중남미 음악여행>을 위해 멀리 남미로 길을 떠났었다.
방송 출연을 기피해오던 차에 큰 맘 먹고 나선 행차인지라
속은 심란했고 일행들과 같이 가는 여행은 괴롭기조차 하였다.
“음반을 안겨드리고서 나는 아바나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 먼 그곳에서 담양을 곱절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인사말이 음반에 적혀있을 것이다. 나는 혼자인 시간을
간절히 기도하며 사는 성격이다. 사색의 기쁨을 아는 때문이다.
고독하지 않은 작가란 믿을 수 없다. 음악도 물론일 것이다.
지역, 지방, 궁벽한 촌락을 노래하는 사운드 트랙을 만드는 일은
저 거창했던 러시아, 쿠바, 노르웨이 여행 음반 등과 맞먹는 일이겠다.
당신의 이 소박하고 쓸쓸한 여행에 여기 촉촉한 노래들이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다. 오직 당신을 위한 따스한 시편.
성원을 힘입어 2집을 안겨드리게 되었다. 이번엔 슬로 시티를 찾아간다.
천천히 느리게 걷는 사람들, 바쁜 일상을 떠난 순례자를 위한 노래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유럽에서 가장 느린 도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한 호텔방. 반바지 차림으로 걸터앉아 몇 자 적자니
내 산골 작업실이나 음반사 귀퉁이에서 시작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글이겠구나 싶어진다. 알프레드 되블린의 장편소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첫 페이지나 같은 글, “이 글은 담양에서 밭을 일구며 음악을 듣는
시인에 관한 보고서이다”, 로 시작하는 그 멋진 문장 말이다.
멀리서 그리워하기, 오히려 멀리서 팔짱을 낄 때 진실은 보이기 마련이다.
여행은 오늘로 보름째, 내가 다시 짐을 꾸리고 산골집에 돌아간다면
먼 곳 베를린에서 담양으로 여행가는 격이리라. 아름다운 아리랑의 땅.
내 침대와 악기와 그릇과 커피 내리는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는 작업실...
시골에서 내가 허물없이 머물듯 내 사랑하는 노래들도 익명의 친구들이다.
유명한 가수의 빌보드 차트가 아닌 인디이거나 집시이거나 숨은 무명의
가수들, 소소한 이웃의 노래. 그런 노래에서야 진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여기 진솔하고 정직한 세상의 모든 음악이 담겨 있다.
“망자들과 그들의 양귀비를 먹은 자만이
더없이 그윽한 음색을 다시 잃지 않으리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는 베를린의 밤.
이곳도 좋지만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고향 담양의 산골집이 그립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듣고 좋아했던 이 노래들을 꺼내어 종일 듣고 있다.
음원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신 세상의 모든 노래 동무들과
특히 이무하 선생님, 우리 동네 월드뮤직 애청자께 감사드린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느리게 걷는 당신의 순례를 축복하며...
2015. 8. 1
떠돌이별 임의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