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꺠춤 임의진, 떠돌이 별이 머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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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낮잠, 임의진을 만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희망 세상> 2011년 1월호 특집인터뷰
글쓴이 : master 날짜 : 2011-01-10 (월) 17:48 조회 :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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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낮잠, 임의진을 만나다
 
 
글, 사진/ 유성문 (희망세상 편집위원)
 
 
 
멀고도 가까운 길이었다. 방랑을 돌아 방랑에 이르는 길. 담양 수북(水北)땅 회선재(回仙齎), 선무당(仙舞堂)의 떠돌이별 어깨춤 임의진. 그는 소위 다종예술가다. 마중물의 시인, 참꽃 피는 마을의 수필가, 예수동화의 동화작가, 세 번의 개인전을 연 화가, 4집 독집음반을 준비중인 포크 싱어, 게다가 '여행자의 노래'를 비롯한 월드 뮤직 음반 선곡자이며 수입음반 기획자이고 해마다 훌쩍 두어달 인적 드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막별의 여행소년이다. 이쯤되면 다채롭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10년간 개신교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던 '남녘교회'의 담임목사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해남과 강진을 떠돌며 붉고 따뜻한 흙을 매만지면서 자랐으며 서울로 상경하여 신학교와 청년시절을 보낸다.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크고 작은 고초에 시달린 것은 반항아의 운명이었다.
당시 진보신학의 산실이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신학대학원(선교교육원)에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공부한 뒤 하나님의 선교라는 사명에 입각한 민중교회 건설에 나선 것은 목사 안수를 받은 즈음이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강진 남녘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열정적인 '투신(投身)'을 하게 된다.
 
그는 오지게 오지랖이 넓은 목사였다. 월간 참꽃 피는 마을 발간(1995), 풍물교실 참꽃마을 개설(1996), 광주에 작은 연못 교회 창립(이후 미래에서 온 교회로 개명)(1997),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운동 전개(마지막 송환 축하 음악회 개최)(1997), 무등산보호 환경음악회 <무등산 풍경소리> 대한불교 조계종 증심사와 공동진행(2002), 등등 통일마당으로, 환경운동으로, 유기농으로, 예술문화마당으로, 구원의 주소지가 다른 절마당까지 안 끼는데가 없었다. 기어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참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움으로 1998년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교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딱 10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안식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마땅히 순례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 안식년이 끝나도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떠돌이별 임의진의 '자기다움'이었다.
 
"목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후 담양에 칩거를 마련했어요. 앞이 캄캄하던 시절, 도반으로 알고 지내던 스님이 홀연 미국으로 길을 떠나시면서 절터를 하나 마련하려고 꿍쳐둔 땅을 저에게 선뜻 내어주셨지요. 잠시 목수가 되어 집을 짓고 옥호를 회선재, 당호를 선무당이라 했어요.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 구경을 하고 싶으면 배낭 하나를 메고 훌쩍 전국 각지, 세계 먼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과거 절친하게 지냈던 인연들 덕분에 먹고 자고는 기본의 해결을 하고, 그닥 여비는 많이 들지 않았어요.
2003년에는 그 길에 동행이 되어준 책과 음악, 친구들에 대한 답례로 월드뮤직 선곡음반 <여행자의 노래>를 펴냈어요. 마치 누군가 밤새워 60분짜리 공테잎에 노래를 모아 선물해주던 감동스런 기억처럼 그런 마음의 답례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음반을 펴낸 이후로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 결과로 <쿠바여행>, <러시아여행>같은 지역별 에피소드 음반을 펴내기도 했고요. 언젠가 숨이 다하면 하늘나라 여행 음반을 펴내게 될지도 모르죠. 어차피 여행은 제게 홀로있기 연습, 곧 죽음 연습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후배가 커피 농사를 갈무리하고 있는 동티모르 섬을 여행하고 돌아와 곧바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여행까지 다녀왔다. 시베리아 티에스알 열차로 추방당한 예언자 트로츠키의 넋이 흐르는 바이칼 호수 일대를 둘러보았다. 풍요의 바다 무당의 호수라는 뜻쯤의 바이칼 호수는 우리 겨레를 낳은 어머니요 아버지 호수라는 이들도 있을만큼 시원의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는 바이칼 호수 작은 섬 알혼에서 마치 만신 무당처럼 넋을 놓고 기도삼매경에 빠졌단다. 제국과 자본에 맞선 목수 노동자 예수의 기도였지만 우리네 4대강과 생명누리, 통일누리를 갉아먹는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바라는 비나리이기도 했다. 그는 바이칼이 추방당한 예언자들을 위무하는, 앞으로도 세상을 오래오래 정신차리게 만드는 찬물 치성이 되어 달라며 기도했다.
 
 
다양성의 사명으로 음반 발매에 몰두하는 그는 얼마전에 <커피 여행>에 이어 <와인여행>이라는 선곡음반을 발매했다. 
"커피여행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와인여행에 실린 곡들도 대부분 와인이라는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엮은 음반입니다. 제가 와인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 것도 모두다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목사로서 성찬 포도주를 나누는 삶을 살게 된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와인의 맛을 결정 짓는다는 갖가지 다른 포도 품종과 떼루아, 양조 방법이 제각각 다르듯이 여기 음반에 실린 월드뮤직들도 각기 다른 품종에, 출생지도 제조법도 다 다릅니다. 
제가 와인과 월드뮤직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다름의 소중함과 신령한 취기 때문입니다. 다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우리는 잊어선 안됩니다. 다를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른 의견을 경청하기, 그것이 내겐 색다른 와인맛, 색다른 노래들이었습니다."
 
 
애초 이 음반을 준비하면서 세계 최대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인 남미 칠레에 입성하려고 완벽한 일정을 짰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진도 8.8의 강진이 칠레에 발생하여 많은 주민들이 죽고 가옥이 부서졌다는 비보를 접하고 말았다.  어쩔수없이 길을 틀어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을 다녀와야 했지만 여전히 칠레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옴쭉달싹 못했다. 그래서 음반에 칠레 포도밭 농장 노동자가 즐겨 부른다는 '칠레 자장가'를 한곡 선물로 넣었다. 칠레 친구들에 대한 염려와 안부를 대신해서이다. 칠레의 포도나무가 다시 무성하게 자라라고, 그곳의 와인 농가들이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의 자유로운 음악 영혼은 감상자나 선곡자를 넘어 내친김에 '카수(?)'로서의 길로까지 나아간다. 거기에는 의형제이자 자유혼의 신화적 가수 김두수 씨의 부추김이 컸다. 2004년 첫노래집이자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인 <하얀새>를 김두수가직접 프로듀서로 제작했다. 이후 2006년에는 명실상부한 자작곡 위주의 독집 음반 <집시의 혀>를 내놓았다. 집시의 혀는 일본의 음악 친구들이 거들고 나섰는데, 야노 토시히로, 사토 유키에, 이토 고키 등이 반주자로 나섰다. 그리고 3집 <방랑길>에서 저다운 서정성을 담지하는가 하면, 이제 2011년 발매될 4집 <수십억 광년의 고독>을 녹음 중이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이번 앨범에도 한 사람을 헌정하고 있는데, 바로 월든의 저자이자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다.
 
그의 변신과 통섭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는 몇차례의 몸풀기를 거쳐서 마침내 본격적인 다종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8년 보헤미안 랩소디를 시작으로 2010년 여행수첩 & 방랑의 별은 뜨고를 지나 인사동 갤러리 아이에서 생애 3번째 개인전 방황하는 영혼을 열었다.  화가로서 3차례의 개인전은 그를 한층 성숙한 자리로 이끌었다. 게다가 2007년부터는 삽화를 직접 넣어 경향신문에 <임의진의 시골편지>라는 인기 칼럼을 장기 연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시골편지' 칼럼은 자연속에서 매주 펼치는 작은 설교나 다름없다. 들꽃과 새들, 물과 바람, 그와 더불어 사는 지역 주민들을 주인공 삼아서 그들이 소재가 되고 어쩔때는 그들이 직접 설교를 하면서 등장한다.  그 회당에서는 예수 또한 농부이거나 목수일 뿐이고 부처는 옆집 아저씨다.
예수 동화를 쓰기도 했던 그는 지금 붓다 동화를 집필중에 있다. 본연의 깨달음을 추구하는데 있어 서로 다르지 않은 '한통속'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단다. 삽화는 목판화가 류연복의 작품으로 넣으려고 한다.  
 
농촌에서, 시골에서 살며 그도 어려움과 애달픔이 없는 것이 아니다.
" 농촌공동체가 깨지면서 농촌문화도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산업으로서의 농업만 있을 뿐이지 생활공동체 농촌은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예요. 어쩌다 마을에 정부 기금이나 떨궈지면 서로 으르렁 대면서 원수가 되어 싸워요. 귀농을 하더라도 받아들일 완충 문화가 없으니 결국 경제논리를 따라가고 맙니다. 시골도 이제는 농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만 남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자연마저 생각없는 사람들이 망쳐놓고 있습니다. 보세요. 비닐의 과도한 사용으로 겨울 들판은 비닐꽃으로 난리도 아닙니다. 순수 영혼의 마지노선이 있다면 누군가 그 자리를 지켜야지요. 최소한이라도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이 농촌에 살면서 자연도 살리고 공동체도 살리고 영혼도 같이 살릴 그런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농촌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일 테지요. 변두리 사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모두들 복판으로 달려가 살려고들 발버둥칩니다. 예수도 부처도 모두 변두리 변방에 살던 친구들이었지요. 주변부는 쓸쓸하지만 그만큼 울타리도 커서 자유가 드넓습니다. 문명 전환을 위한 장소로 적당한 곳이지요. 이 활주로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변두리가 건강해야 중심부도 숨통을 틀 수 있어요. 도시가 살기 위해서라도 시골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최소한 나는, 당분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요 , 우리!"
 
새해에는 좀더 예술 작업에 집중할 생각이다. 사람들과 어울림도 좋지만 그만큼 작업량은 저하된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예술노동의 투쟁 정신의 한번 밀어부쳐보고 싶은 바람이다. 골방을 더 사랑하고 자기 집중을 더 높여 좋은 작업을 성취하려고 부단한 발버둥을 친다. 4집 앨범을 낸 후 남국의 뉴질랜드와 인근 섬으로 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단다. 그곳에서 떠돌이별을 맞이하는 음악회를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떤 조심스러움 때문에 10년동안 내지 못하고 망설여왔던 수필집도 올해는 꼭 펴내려고 마음먹었단다. 그렇지만 건강하게 이웃들과 막걸리를 같이 마실 여유쯤은......
 
"올해는 토끼띠입니다. 그래서 <토끼의 낮잠> 이라는 화두를 생각해 봅니다. 토끼가 거북이와의 경주 도중에 낮잠을 자는 것은 일부러 거북이를 이기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너도나도 이기는 데만 몰두하며 살아왔습니다. 1등은 인생의 정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달리는 것만 생각하며 사는 거 같아요. 이제는 어느정도 경제 성장도  이루어놓은 마당이니 그동안 부와 힘을 쌓은 사람들은 그만 이제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일 좀 그만해야 뒤처진 거북이가 따라잡을 것 아닙니까. 토끼가 잠시 낮잠을 자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산들바람 부는 산언덕에 팔베개하고 누워 묵상에 드는 기분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무 잡다했는가. 그렇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있어 다양성, 다채로움은 사명감에 다름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다양성, 다양성의 인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다양성이 부족할 때 전체주의 봉건제적 사고가 팽배해지고, 주류 비주류로 나위어 체제와 반체제의 대립이 심각해진다고 그는 믿는다. 사회적 상식 안에서 다양성이  존중될 때 비로소 새로운 사상과 실천이 싹트고 문명 진화의 기반이 잡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평화도 오해없는 정착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고 있다.
 
"제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니 즐거운 평가입니다. 제가 기성제품이 아니라는 것, 수제품이라는 것, 밑바닥 남녘이 만들어낸 핸드메이드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예수를 닮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와 다른 것이 좋아 그의 제자인 사람입니다. 저는 예수와 가장 다른 아름다움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게 소원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저 같은 통속에서 비껴선 자들, 토끼의 낮잠을 즐기는 자들이 많아야 세상은 즐겁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바뀝니다. 하나같이 똑같은 기성품들은 재미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욕망에서 벗아나 자유로운 영혼의 존재로 어우렁더우렁 내 식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누가 어쩐다더라는 건 그냥 뉴스일 뿐입니다. 나는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그것이면 대만족 아닙니까?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남이 나와 다름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기,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가 내 품안에서 숨쉬게 해줄 때 싹트는 신의 선물입니다. 남을 내 멋대로 재단하고 굴종하게 하려는 태도는 대단히 위험한 태도입니다. 남을 손아귀에 넣고 함부로 주장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깝고 슬플 따름입니다. 내편 네편 가르고, 시기 질투로 가득찬 사람들은 속히 내면의 선한 변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해와 존중은 항시적이어야 하며, 매사에 진솔해야 합니다. 모두를 인정하고, 그저 기도로 지켜보아주고, 절대 강제하지 않기! 어디서나 떠나고 비우고 다양한 영혼을 만나 사랑하는 일! 그것이 내 앞으로 인생의 바람이라면 바람이고 순례라면 순례입니다. 우리가 지구별을 떠나 우주여행을 할 때를 대비해서 저같은 '미리 외계인', 따로 국밥도 한명쯤은 있어야지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월간 <희망 세상>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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