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62) 화백의 첫인상은 그랬다. 입버릇처럼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흰머리를 가지고 싶다”는 한 회사 선배의 말처럼 어깨까지 내려오는 하얗게 센 박 화백의 머리는 훤칠한 키, 서글서글한 미소와 어우러지면서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줬다. 재킷 한쪽 주머니에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스케치북이 들어 있었고, 안쪽 주머니에는 붓펜 2자루가 꽂혀 있었다. 세상을 그리는 만화가, 현재와 일상을 기록하는 시사만화가 박 화백은 그랬다.
오는 29일(오전 11시∼오후6시, 공휴일 휴관)까지 광주 메이홀에서 열리는 박재동 신작전 ‘숨 쉬는 이유’ 개막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5일 광주를 찾은 박 화백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박 화백의 만화 작품전이다.
시사만화가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변신한 그는 최근에는 ‘손바닥 그림’ 운동가로 시민들에게 작은 만화와 그림을 보급하고 있다. 어른 손바닥만한 스케치북에 우리 주변의 인상적인 것들을 뚝딱 그려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손바닥 그림’이다. 인상 좋은 과일가게 아저씨부터 택시기사와 나눈 대화, 동네 파지 줍는 할머니, 선술집 손님들의 이야기까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그는 그림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그의 재킷에 항상 스케치북과 붓펜이 들어 있는 이유다.
“손바닥만하게 그려도 대작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우리가 학교에서 12년간 미술을 배우지만 그 미술을 취미로 가진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난 못 그려’하고 말하는 것이 전부지요. 우리 미술 교육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죠. 못 그려도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미술 선생님을 내보내세요. 구경만 하지 마시고 스케치북에 몇 줄의 선으로 인상깊었던 일들을 그려보세요.”
박 화백은 예술가를 존중하는 도시 광주에 오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자신을 시사만화가 길로 들어서게 한 5·18 민중항쟁이 발생한 곳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될 수 있으면 전시를 안 하려고 하는데 메이홀은 시민들이 자생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전시를 하게 됐어요. 특히 제 피 같고 살 같은 ‘한겨레 그림판’을 100여 점 가까이 선보이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이고, 다시는 그릴 수 없는 작품들이죠.”
만화방 주인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만화를 보고 그렸던 그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휘문고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1988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8년간 ‘한겨레 그림판’이라는 이름으로 만평을 그렸다.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만평은 촌철살인이었다.
두 가지가 그를 시사만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하나는 5·18 등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저는 선생님 같은 그림은 안 그릴 거예요. 삶도 없고, 역사도 없잖아요”라는 제자의 말을 듣고 서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추상화에 빠져 있었는데, 제자의 말을 듣고, 매일 삶을 그릴 수 있는 시사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시사만화가는 매일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아픈 곳을 후벼파야 합니다. 하지만 따스한 것이 없으면 분노할 수 없어요. 8년간은 진정 전투였습니다. 시사만화가는 굉장히 골 터지는 일이죠. 또 엉덩이를 ‘주구장창’ 붙이고, 그 순간, 또 매일 혼신을 다해 ‘꾸역꾸역’ 그려야 독자들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데 내가 그걸 잘 했어요.(웃음) 한 마디로 노동이고, 똥을 싸는 일이죠.”
그는 ‘한겨레 신문’ 전체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으로 만평을 그렸다. 박 화백은 시사만화가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천재적인 영감도 중요하지만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그리면 순간 나 자신과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아니야, 아니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다른 이들에게 평가를 받았죠. 저는 이미 오염돼서 잘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8년 정도 되니깐 밑천이 다 떨어져 신문사를 나왔습니다. 그전에는 내가 그리고도 내가 놀랐는데,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림을 통해 시대를 말해온 그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죠. 아직도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너무 답답하기만 하죠. 후배들이 만평으로 잘 다뤘는데, 저도 그림쟁이니 이번 참사에 희생된 아이들의 캐리커처를 그려봤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참사에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또 그 안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만약 아이들이 선장이고, 승무원이었다면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의 010-6791-8052.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
/사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오는 29일(오전 11시∼오후6시, 공휴일 휴관)까지 광주 메이홀에서 열리는 박재동 신작전 ‘숨 쉬는 이유’ 개막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5일 광주를 찾은 박 화백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박 화백의 만화 작품전이다.
시사만화가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변신한 그는 최근에는 ‘손바닥 그림’ 운동가로 시민들에게 작은 만화와 그림을 보급하고 있다. 어른 손바닥만한 스케치북에 우리 주변의 인상적인 것들을 뚝딱 그려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손바닥 그림’이다. 인상 좋은 과일가게 아저씨부터 택시기사와 나눈 대화, 동네 파지 줍는 할머니, 선술집 손님들의 이야기까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그는 그림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그의 재킷에 항상 스케치북과 붓펜이 들어 있는 이유다.
“손바닥만하게 그려도 대작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우리가 학교에서 12년간 미술을 배우지만 그 미술을 취미로 가진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난 못 그려’하고 말하는 것이 전부지요. 우리 미술 교육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죠. 못 그려도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미술 선생님을 내보내세요. 구경만 하지 마시고 스케치북에 몇 줄의 선으로 인상깊었던 일들을 그려보세요.”
박 화백은 예술가를 존중하는 도시 광주에 오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자신을 시사만화가 길로 들어서게 한 5·18 민중항쟁이 발생한 곳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될 수 있으면 전시를 안 하려고 하는데 메이홀은 시민들이 자생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전시를 하게 됐어요. 특히 제 피 같고 살 같은 ‘한겨레 그림판’을 100여 점 가까이 선보이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이고, 다시는 그릴 수 없는 작품들이죠.”
만화방 주인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만화를 보고 그렸던 그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휘문고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1988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8년간 ‘한겨레 그림판’이라는 이름으로 만평을 그렸다.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만평은 촌철살인이었다.
두 가지가 그를 시사만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하나는 5·18 등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저는 선생님 같은 그림은 안 그릴 거예요. 삶도 없고, 역사도 없잖아요”라는 제자의 말을 듣고 서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추상화에 빠져 있었는데, 제자의 말을 듣고, 매일 삶을 그릴 수 있는 시사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시사만화가는 매일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아픈 곳을 후벼파야 합니다. 하지만 따스한 것이 없으면 분노할 수 없어요. 8년간은 진정 전투였습니다. 시사만화가는 굉장히 골 터지는 일이죠. 또 엉덩이를 ‘주구장창’ 붙이고, 그 순간, 또 매일 혼신을 다해 ‘꾸역꾸역’ 그려야 독자들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데 내가 그걸 잘 했어요.(웃음) 한 마디로 노동이고, 똥을 싸는 일이죠.”
그는 ‘한겨레 신문’ 전체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으로 만평을 그렸다. 박 화백은 시사만화가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천재적인 영감도 중요하지만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그리면 순간 나 자신과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아니야, 아니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다른 이들에게 평가를 받았죠. 저는 이미 오염돼서 잘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8년 정도 되니깐 밑천이 다 떨어져 신문사를 나왔습니다. 그전에는 내가 그리고도 내가 놀랐는데,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림을 통해 시대를 말해온 그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죠. 아직도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너무 답답하기만 하죠. 후배들이 만평으로 잘 다뤘는데, 저도 그림쟁이니 이번 참사에 희생된 아이들의 캐리커처를 그려봤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참사에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또 그 안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만약 아이들이 선장이고, 승무원이었다면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의 010-6791-8052.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
/사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