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총알’전. ‘5월 작가’ 홍성담씨(58·사진)가 33년 전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지난 10일부터 광주 동구 메이홀(May Hall)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당시 계엄군이 무장한 M16 소총에서 총알이 발사돼 시민이 맞을 때까지의 순간을 그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과정에서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그날의 총과 총알이 21세기 오늘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전시회 나흘 전 경기 안산의 작업실에서 만난 홍 작가는 “이번 전시회는 한마디로 기억과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여러 번 전시회를 열기는 했지만 5·18만을 주제로 한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되도록이면 ‘광주’와 관련된 그림은 배제하려 애써왔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데 언제부턴가 일부 당사자만의 일이 되었고, 몇몇 단체는 권력화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왜곡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오랜 시간 기억과의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 작가는 “30년 전 광주 삼양백화점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해마다 국내외에서 두세 차례 전시회를 열고 있지만 이번처럼 긴장되고 흥분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남 신안 출신인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 찼던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하며 민미협의 전신인 전국민중미술연합회를 결성한 민중미술 1세대 작가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상을 알릴 시각매체라고는 신문 보도사진 말고는 없었어요. 그래서 판화 작업을 시작한 겁니다. 그 때문에 나를 일러 ‘5월 화가’라고 하는데 그땐 작품이 아니라 ‘운동의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0편으로 구성한 연작 ‘5월 판화’에 광주의 아픔을 새겨 세상에 알렸다. 그 이후 300여점에 달하는 판화작품을 남겼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그를 놓아둘 리 없었다.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낸 걸개그림 ‘민족해방사’의 슬라이드 필름을 제작·배포한 주동자로 지목돼 3년의 실형을 살았다. 그가 수감되자 국제앰네스티는 그를 ‘올해의 양심수 3인’(1990년)으로 뽑았고 전 세계 많은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그의 구명활동에 나섰다.
1993년 출소한 후 ‘예술가가 될 것인가, 운동가가 될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당사자로서, 이를 기록해야 할 책무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옥중체험과 1980년 광주의 기억을 소재로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광주를 위해 젊은 날을 바친 그이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의 화두는 여전히 광주다. 어떻게 하면 광주의 이미지가 ‘저항의 도시’에서 ‘창조의 도시’로 극복되고 승화될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광주가 더 이상 역사적·정치적 고통 속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날의 총알이 썩어서 새로운 씨앗이 되어야 해요. 창조적인 고통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예술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예술이 시대를 바꿀 수는 없어요. 또 나 같은 화가가 역사에 개입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마중물이나 씨앗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메이홀(관장 임의진 목사)은 지난해 8월 한 치과의사가 건물 3개층을 후원하고, 화가·조각가·음악가로 구성된 ‘따뜻한 모임’ 회원 10여명이 힘을 보태 건립된 대안공간이다. 1980년 5월의 공동체 정신을 계승하고 문화로 따뜻해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고 있다.
